매일신문

[심영섭의 올 뎃 시네마]다크 나이트

마침내 최강의 적을 만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다크 나이트'자신의 출신성분 그 자체인 배트맨이란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배트맨의 연대기를 창조한다. 배트맨 원전 만화에서 배트맨의 애칭은 암흑의 기사였지만,'배트맨 1 2 3','배트맨 비긴즈','배트맨과 로빈'등등 이제까지 배트맨을 포기한 영화를 상상할 순 없었다. 그러나 놀란은 놀랍게도 과감하게 배트맨의 딱지를 떼어 버리고,'dark knight의 수난기'인지, 한 도시의 dark night의 탄생기'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의 액션-느와르를 창조하고야 말았다.

으스스한 고딕풍의 도시였던 고담은 이제 유리가 반들거리고, 마천루가 이웃집 수퍼마켓보다 더 가까운, 범인의 접근을 거부하는 자본주의의 성채로 변모했다. B급 호러와 표현주의를 사랑했던 청년감독 팀 버튼의 손에서 몽환적인 고담이 탄생됐다면, 영국 출신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9.11 이후 미국 그 자체를 은유하는 차가운 땅으로 고담을 되돌리며, 철저하게 사실주의의 외관을 덧씌운다. 결과적으로 시카고나 홍콩에서 직접 현지촬영을, 그것도 아이맥스 촬영을 감행했던 고담의'부감 샷'(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듯이 아래쪽을 촬영하는 앵글을 하이앵글 혹은 부감이라고 함)들은 전 세계 어떤 거대 도시의 밤과도 다르지 않은 색깔을 지녔다.

그러나 이 모든 것만이'다크 나이트'의 색깔을 더욱 더 다크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다크 나이트'의 주인공들은 선과 악의 모든 경계를 허물며 그 어느 때 보다 고독하고 허무한 심연의 늪에서 긴 그림자놀이를 벌인다.'배트 맨'의 가장 합법적인 적자처럼 보이는 신임 검사보'하비 덴트'는 늘 앞면만 나오게 만든 행운의 동전처럼, 가장 양지쪽에서 인물인가 싶다가 어느 새 마천루의 시궁창에 얼굴을 박고야 만다. 조커는 더이상 유쾌 발랄한 우상 파괴자가 아니라, 지독히 자학적이고 상처 투성이의 가면에 텅 빈 광기의 충동으로 가득하다. 배트맨의 얼터 에고(또다른 자아)로 양지와 음지를 대변하는 것 같은 하비 덴트와 조커 모두는 배트맨과 이 악몽의 미궁에서 죽음의 블루스를 추며, 혼돈의 키스를 나누어 가진다.

그래서 오히려 경찰 취조실에서 광분하는 배트맨이 조커 보다 더 한층 자신을 속이는 가엾은 인간으로 보이며, 조커가 배트맨에게,'넌 날 완전하게 만들어'라며 키득일 때, 슬며시 조커에게 연민의 정마저 느껴진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이 배트맨의 망상이나, 조커의 환상이나, 하비 덴트의 악몽일지도 모른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세계에서는 보는 이의 진술성에 따라 영화의 주관성이 담보된다. 진정'다크 나이트'의 정수는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들어 낸 거대한'혼돈의 구덩이'앞에 서보는 경험이다.'진실만으론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는 '다크 나이트'의 마지막 대사처럼. 그가 왜 마술사의 엄혹한 진실 게임인'프레스티지'를 만들고, 그가 왜 시간의 퍼즐게임인'메멘토'를 만들었을까. 크리스토퍼 놀란은 진정 진실의 교란자, 혼돈의 전도사, 이성의 파괴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 미몽과 흉터로 가득한 놀이터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다크 나이트'는 우리가 광기의 가속도에 놀랄지언정, 그 가속도를 거부할 길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며, 미국에서 지금 타이타닉 흥행 역사를 추격하고 있다.

다시 개들에게 쫓기며, 도시의 진창을 헤맬 배트맨의 운명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웅으로 죽거나 끝까지 살아남아 악당이 되는 것. 죽거나 나쁘거나.'메멘토'처럼'다크 나이트'의 속편은 또다른 혼돈의 시작이자, 전편보다 더 혼돈스런 선과 악의 캐논변주곡을 들려 줄 예정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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