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에는 세계 인구 3분의 2가 물부족을 겪고, 앞으로 10년 안에 물값이 원유가격만큼 상승하면서 물 전쟁(Water Wars)이 발발할 수 있다." 지난달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세계미래회의(World Future Society)가 내놓은 '2025년 미래전망'의 일부다. 함께 열린 UN 밀레니엄 프로젝트도 '깨끗한 식수 획득'을 앞으로 지구가 맞이하게 될 15개 도전과제의 하나로 제시했다.
21세기를 '물의 시대'로 예측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세계적 물 기업 대부분의 본사가 있는 유럽 각국들도 일찍이 물 산업의 성장성에 주목하고 관련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1989년 세계 최초로 상하수도 분야를 100% 민영화한 영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2015년까지 128조원 투자수요
지난달 19일 영국 런던. 총리 관저가 있는 다우닝가(街)는 아스팔트를 부수는 굴착기의 요란한 굉음으로 몹시 시끄러웠다. 관광객들로 늘 붐비는 인근 소호 지역과 코벤트 가든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오는 2010년까지 1천770㎞가 넘는 노후 상하수도관을 교체하는 대공사 때문이다.
사실 런던의 상하수도관은 영국에서도 가장 낡았다. 대부분 100년이 넘었고 150년 이상 된 곳도 많다. 낡은 파이프에서 새어나가는 물의 양은 하루 8억6천500만ℓ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72만명이 하루 동안 쓸 수 있고, 올
림픽 수영경기장 400개 정도를 채울 수 있는 물을 매일 헛되게 흘려보내는 셈이다. 런던의 누수율은 유럽 대도시 가운데에서 최고 수준이며 현지 언론에 따르면 총리 공관조차 정부 건물 중에서 누수량이 가장 많은 곳으로 꼽힐 정도다.
이에 따라 안정적 상하수도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는 수도관 교체가 필수적이다. 19세기 빅토리아시대부터 사용해온 낡은 철관 대신 새로운 플라스틱 파이프를 사용하게 되면 최소한 100년 이상 누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영국의 상하수도 투자수요는 2015년까지 128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김상욱 KOTRA 런던무역관장은 "영국뿐 아니라 유럽은 노후화된 수로, 전기, 철도 등을 교체하는 미래도시 인프라 구축사업을 추진 중이어서 한국 업체에 새로운 사업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모두 1조3천억원이 투자되는 런던 상하수도관 교체사업에는 국내 군인공제회도 투자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 최초의 물 정책 실험
런던 시내 상하수도관 교체는 우리나라처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하지 않는다. 런던과 인근 템스 밸리 지역 1천700만명에게 상하수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템스 워터(Thames Water)사가 맡고 있다. 템스 워터의 최대주주는 호주계 투자은행인 맥쿼리(Macquarie)은행으로 지난 2006년 독일계 회사인 알베에(RWE)로부터 인수했다. 영국 상하수도시장이 독과점 형태여서 안정적 수익 확보가 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템스 워터와 같은 물 기업들은 영국정부의 물 산업 효율화를 위한 구조개편의 산물이다. 영국은 1973년 '물 법'(Water Act)에 따라 물 관리와 관련된 모든 기능을 10개의 지역물관리공사(Regional Water Authority)로 통합한 뒤 강력한 민영화 드라이브를 걸었던 대처 정권 시절인 1989년 완전 민영화를 도입했다. 시설 운영은 물론 소유권까지 민간기업에 이전한 세계 첫 사례다.
대신 상하수도서비스업체의 체계적 규제 및 감독을 위해 독립기구인 OFWAT(Office of Water Service)을 신설해 수도회사의 요금 결정, 수도사업자 평가 등을 실시하고 있다. OFWAT의 운영비용은 수도사업자의 부담금으로 조달되며 평가결과를 수도요금에 반영하고 행정처분·벌금 적용 등의 권한도 갖고 있다. 실제로 OFWAT는 올봄, 세계 12위 물 기업인 세번 트렌트(Severn Trent)가 고의적으로 허위 누수율 자료를 공시했다며 매출액의 3%에 해당하는 70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마크 한(Hann) OFWAT 수도요금 프로젝트 매니저는 "영국 전역의 10개 상하수도사업자와 15개 상수도공급회사는 수압·공급 안정 등 8개 항목에 걸친 평가지표 항목 성과를 매년 제출해야 한다"며 "5년마다 갱신되는 각 회사별 요금상한 기준도 사업자 평가결과에 따라 다르게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사유화의 명암
하지만 영국은 국내 물기업을 세계 선두권 기업으로 육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업체간 비교경쟁 체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국내 물 기업 간의 인수합병을 엄격히 제한했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는 10개 상하수도회사 가운데 3곳이 사모펀드에 인수되면서 해외시장 철수 등 성장 잠재력도 약해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 산업 시장조사기관인 영국 GWI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세계 10위권 내 영국 물 기업은 유나이티드 유틸리티즈(United Utilities·4위), 템스 워터(9위) 등 2곳이다.
사유화에 대한 반발도 최근 다시 두드러지고 있다. 시민들은 회사 측이 책임은 다하지 않은 채 수돗물 가격 인상에만 열을 올린다고 분노하고 있다. 영국의회 물 관련 연구그룹(APPWG)도 지난 4월 발표한 '영국에서 물의 미래'(The Future of The UK Water Sector)라는 보고서에서 민영화 이후 요금 상승, 심각한 누수, 민간기업의 비리 등으로 민영화에 대한 부정적 의견과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10년 단위 투자목표 설정 및 5년 단위인 가격상한제의 변경 등을 권고했다. 지난해 8월 기준 영국 가구당 상하수도요금은 63만6천400원으로 민영화 이후 실질가치로 따지면 42% 상승했다. 이 같은 여론에 따라 OFWAT도 최근 경쟁체계를 도입하는 방안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권형준 한국수자원공사 수자원정책경제연구소장은 "상하수도산업은 어느 나라에서든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자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는 형편이어서 민영투자사업에는 부적합한 면이 있다"며 "영국의 완전 민영화 정책을 한국에 적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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