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동의 전시 찍어보기] 사진 속에 표현된 일상의 삶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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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청년작가초대전' 중에서 김창섭의 전시 작품.

올해의 청년작가초대전 / -8.31 / 대구문화예술회관

어떤 작품에서 깊은 인상을 받게 되면 그 작가의 작품세계에 가까이 가는 계기가 오기 쉽다. 아직 사진 장르에 그렇게 큰 관심을 갖지 못했을 때 우연히 한 작품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대형 사진 화면을 뒤에서 빛을 비추는 라이트박스 장치 같은 데 넣어서 전시하는 제프 월(Jeff Wall)이란 작가의 작품을 한 미술관에서 보았다. 큼직한 가방을 든 처진 어깨로 한 청년이 멀리 도시를 배경으로 한적한 변두리의 풍경 속을 홀로 걸어오는 모습을 담은 장면이었는데 귀가, 귀향, 실업, 가난, 꺾인 희망 등의 관념들과 함께 짙은 우수를 느끼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현대의 일상적 삶을 신랄한 풍자에 담아 연출한 사진들로 주목받는 작가였다. 보통 사진들처럼 조명 아래 전시되지 않고 뒤에서 빛을 비추어 보게 하는 그 역방향의 전시 방식(시바크롬 사진)에서도 일종의 도치가 은유로 작용하는 것을 알아채고 난센스의 현실을 패러디하는 그 내용과 더욱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해봤다.

사진도 그림과 마찬가지로 대상을 재현하고 표현한다. 그러나 기계장치를 통한 재현방식 때문에 마치 객관적 진실과 더 가까운 양 일종의 환상을 갖게 만들었다. 사진의 리얼리티를 포착하는 기능은 처음부터 높은 신뢰를 얻고 있었지만 예술적 창조성에서는 물감과 화필을 도구로 쓰는 회화에서 만큼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계에 의해 생산된 이미지라 하더라도 제작과정에 작가의 주관성이 개입될 여지는 너무나 많다. 주제나 소재의 결정, 피사체의 선택에서부터 촬영의 조건을 취사선택하기까지 그리고 얼마든지 강조나 생략을 연출할 수가 있다. 촬영 뒤에도 수정, 합성, 편집 등 온갖 방법의 기술이 적용될 수 있는 환경을 고려한다면 결국 사진도 회화만큼이나 작가의 의도와 기교가 개입되어 우리 앞에 굴절된 자연을 제시하는 셈이다. 그것은 작가의 관념의 반영일 수도 있고 이미지의 미학적 시각성 그 자체일 수도 있겠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 시대 더욱 용이해진 사진의 가용성으로 인해 이전보다 사진예술의 세계에 한걸음 더 가까이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때마침 한국현대사진 60년전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막되었다. 우리나라 현대사진의 역사를 대표적인 작품들과 함께 조망해 볼 수 있는 대규모 기획전이다. 예술의 전당에서는 '매그넘 코리아'라는 대형 사진전이 화제를 모았다. 지금 대구에도 몇몇 사진전이 눈에 띄는데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올해의 청년작가초대전에 세 명의 사진작가가 포함되어 있어서 각각의 개인전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김창섭 작가는 포항의 송도라는 특정한 장소에서 시간의 경과 속에 변해가는 삶의 다양한 자취들을 추적하는데, 흑백사진을 통해 전하는 풍경들인 만큼 퇴락해가고 있던 대상들을 한층 더 적적하게 느끼게 한다. 그런데도 기계를 통과한 차가운 시선들 너머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어떤 정서의 동요와 그것에 말없이 따르는 동작들이 보이는 듯도 하다.

김영동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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