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기장마다 反韓·反日 응원…매너없는 주인들

경기장 밖에서 만나는 중국인들은 한국에서 온 손님에게 최대한 친절함을 보인다. 택시를 탈 때면 비록 기사와 의사 소통은 잘 되지 않지만 '한궈(韓國)?'라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올림픽 경기장 곳곳에 인해전술을 방불케 하다시피 배치된 자원봉사자들도 한국 기자들을 따뜻하게 맞아준다.

하지만 경기장에 가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한국 손님에게 친절함을 보이던 개개의 중국인들은 경기장에서 집단으로 뭉치자 '한국이 싫다'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19일 베이징의 우커성 야구장에서 벌어진 한국과 쿠바의 경기. 관중석과 달리 각국의 기자들이 모여있는 기자석에서는 자국팀 선수들이 선전을 펼쳐도 웬만해선 환호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는 건 아니지만 타국 기자들을 서로 배려하는 것이 불문율이기 때문. 그러나 기자 앞에 앉은 중국 기자들은 쿠바가 안타를 때리거나 득점을 올릴 때면 어김없이 환호와 함께 박수를 치며 마치 중국팀이 경기를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뿐만 아니다. 한국 축구가 카메룬, 이탈리아, 온두라스와 맞붙는 동안 중국 관중들은 한국의 상대팀을 일방적으로 응원했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 경기가 벌어지는 경기장이라면 이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으로 굳어지고 있다.

중국인들은 일본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감정을 드러낸다. 20일 미국 대 일본전이 벌어진 우커성 야구장. 일본 관중들이 '니폰, 니폰'을 외치며 자국팀을 응원할라치면 어김없이 대규모 중국 관중들의 '짜요(加油·힘내라) USA' 함성이 경기장을 뒤덮어 버렸다.

베이징올림픽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현지에서는 중국 관중들이 이번 올림픽을 통해 표출한 반한(反韓)·반일(反日) 감정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반한·반일 감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SBS는 개막식 리허설 장면을 무단 촬영해 보도하는 등 중국인들로부터 중국이 100년 동안 준비해온 올림픽을 한국이 망치려 든다며 공분을 샀다. 중국인들은 이에 앞서 올림픽 성화 봉송이 한국에서 방해를 받은 것에 대해서도 썩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터였다. 과거 일본의 중국 침략, 조어도 영유권 분쟁, 신사 참배 등으로 쌓여있는 중국의 반일감정 역시 비슷한 처지인 한국에서의 반일감정을 감안해 보면 쉽게 납득이 간다.

이처럼 중국에서의 반한·반일 감정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고 또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생각하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문제는 반한·반일 감정이 올림픽 경기장에서 노골적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갈등이 있는 곳에 화합을, 분쟁이 있는 곳에 평화를 추구하는 올림픽 정신에 비추어 보면 하필 올림픽 경기장에서 분출되는 중국인들의 반한·반일 감정은 손님을 초대한 축제의 주인답지 못한 행동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지방신문협회 공동취재단 베이징에서 노정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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