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소방관

스턴트맨(stunt man)은 영화나 TV드라마 등에서 위험한 장면에만 전문적으로 출연하는 단역배우들이다. 이를테면 자동차 사고를 당한다거나 벼랑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격신 등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한 장면에서 주인공을 대신해 위험한 역을 도맡는 사람들이다. 크고 작은 부상은 물론 때로는 목숨을 잃기도 한다.

홍콩 출신 월드 스타 청룽도 알고 보면 스턴트맨에서 시작했다. 우리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외국 스타이기도 한 그는 20대 무명 배우 시절 국내 액션 영화에서 스턴트맨으로 일한 적도 있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요즘도 청룽은 대역을 쓰지 않고 위험한 장면에 직접 출연한다고 한다.

소털처럼 많고 많은 세상의 직업 중 유난히 위험을 달고 사는 직업이 있다. 스턴트맨도 그렇지만 소방관도 대표적인 위험 직업의 하나다. 소방관들이 가는 곳엔 언제나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구덩이와 유독 가스만이 있다. 불길 속을 헤치며 인명을 구조하는 일은 제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언제 건물이 무너져 그 밑에 자신이 깔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그런 것을 계산할 겨를조차 없다. 오로지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는 필사의 구조활동만 있을 뿐이다.

많은 소방관들은 생사가 갈리는 화재 현장에서의 두려움과 불안, 미처 구조해 내지 못한 희생자들에 대한 죄책감, 그들의 비명소리가 환청처럼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에 대한 사회적 지위와 대우는 너무나 미미하다.

지난 20일 서울 은평구 한 나이트클럽 화재 진압에 나섰던 소방관들 중 3명이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려 숨졌다. 2001년 서울 홍제동 화재 때 소방관 6명이 희생된 뒤 또다시 재연된 참사다. 한 어머니의 유일한 가족인 외아들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그날이 적금 만기일이라고 자랑하던 소방관의 사연도 애잔하기는 마찬가지다.

2002년 뉴욕의 9'11 대참사 때 수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며 필사의 탈출을 할 때 죽음이 기다리는 현장으로 달려간 사람들도 바로 소방관들이었다. '직업'을 넘어선 진정한 '天職(천직)' 의식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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