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방송인 중에 자기 이름을 내걸었을 때 고개를 끄덕일 만한 '네임 밸류'를 가진 인물은 흔치 않다. 대구MBC에서 FM 라디오를 통해 지난 14년간 '김영주의 FM 모닝쇼'를 진행했던 김영주(40) 정도라면 어떨까? 라디오 진행자가 바뀌었다고 해서 애청자들이 방송국 앞에서 피켓 시위까지 벌인 것은 이전에 없던 일. 지난해 10월 김영주가 'FM 모닝쇼'를 떠나자 벌어진 일이었다. 이런저런 말과 루머들도 많았다. 이제는 표준FM '즐거운 오후 2시'를 통해 청취자를 찾아가는 그를 만났다.
◆청취자와 공감할 줄 아는 진행자
-인터뷰에 잘 응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유는 뭡니까?
(사실 그는 인쇄매체와의 인터뷰에 잘 응하지 않는다. 혹자는 "얼굴에 자신이 없어서"라며 인터뷰 거절에 대한 서운함을 담아 추측성 루머를 퍼뜨리기도 했다.)
"딱 한번 모 일간지와 인터뷰를 했는데 글쎄 전국에 있는 지인들이 전화를 걸어와 '왜 그렇게 늙었니?'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하는 거예요. 사진이 조금 이상하게 나왔거든요. 하하하. 얼굴도 사실 안 예쁘고…. 인터뷰를 잘 안 하는 진짜 이유는 라디오에 충실하고 싶어서예요. 제가 중학교 시절 김기덕씨나 이종환씨의 라디오를 들으면서 나름대로 환상을 키웠는데, 실제 모습을 보니까 그게 깨지더라고요. 우리 청취자분들도 각자 갖고 있는 김영주에 대한 이미지가 있을텐데 굳이 그것을 깨고 싶지는 않았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짧게 요약해 본다면?
"대구에서 태어나서 학교도 전부 여기서 다녔어요. 대구에서만 40년 가까이 산 셈이 되는데, 중간에 방송을 잠시 쉬면서 4개월가량 포항에 머문 것 외에는 대구를 떠나본 적이 없네요. 1990년에 대학(경북대 신문방송학과)을 졸업했고 이후 KBS대구총국에서 리포터 겸 프로그램 진행자로 2년간 경험을 쌓은 뒤에 1993년부터 대구MBC에 몸을 담았죠."(그는 신문과도 인연이 있었다. 취재기자로 모 지방일간지에 입사했다가 적성에 안 맞아 편집기자로 근무했고, 그 신문사가 문을 닫은 뒤 다른 신문사 교정부에서 한달 반가량 근무하기도 했다. 'FM모닝쇼'에 '김영주 기자와 함께 떠나는 주말여행'이라는 코너를 맡은 것이 방송에 입문한 계기가 됐다.)
-라디오 청취자와 공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사연이 너무 재미있어서 웃다가 방송 사고 낼 뻔도 했고, 눈물을 흘리다가 방송 원고를 제대로 읽지 못한 적도 있었어요. 제가 공감한다고 청취자들이 느끼니 고마울 따름이죠. 특히 1999년에 방송을 잠시 쉴 때 고마움을 참 많이 느꼈어요.(당시 김영주씨는 결혼을 했고, 방송을 쉬는 것이 그 때문이라고 소문이 났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6개월가량 방송을 쉴 수밖에 없는 아픔이 있었지만 굳이 과거를 들추고 싶지 않다고 했다.) 6개월 뒤 다시 복귀했을 때, 평소 방송국 홈페이지에 15개 남짓 올라오던 댓글이 갑자기 수백개로 늘어났어요. 깜짝 놀랐죠. 그때 새삼 청취자와 소통하는 의미를 깨달았죠."
◆김영주와 'FM 모닝쇼'
-라디오 진행자로서 10년 이상 장수할 수 있었던 나름의 비결이 있었다면?
"모닝쇼를 할 때 보통 새벽 5시에 일어났어요. 알람시계 4개를 켜두죠. 처음엔 한 개를 썼는데, 하루는 건전지가 다 돼서 알람이 울리지 않은 거예요. 눈을 떠보니 6시 40분. 눈꼽도 안 떼고 방송국으로 날아갔죠. 다행히 펑크는 나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알람시계를 여러 개 준비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겨울에 눈이 오면 방송국 옆 모텔에서 잠을 잤죠. 결혼한 뒤에는 모텔방에 남편이 함께 있어주기도 했고요. 호호호."(그는 결혼한 지 5년 만에 '꿈에 그리던' 아기를 갖게 됐다. 주위 어른들은 방송 스트레스 때문에 아기가 없는 것이라며 수시로 그만둘 것을 종용했단다.)
-조금 껄끄러운 질문일 수도 있는데, 'FM 모닝쇼'를 중도 하차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거리낌없이 말하는 유형의 사람이지만 이 질문에는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지난해 10월 'FM 모닝쇼'를 그만둔 뒤 열성팬들은 방송국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고, '김영주를 돌려달라'며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그는 자기 자리를 대신한 사람이 심하게 마음 고생을 했을 것이라며 한참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개편 때문이었어요. 특별한 의미는 없었습니다. 처음에 '모닝쇼'를 떠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래 내가 지겨운 사람도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만두고 나니까 '다른 프로그램을 맡을 수도 있겠다'고 잠시나마 생각했던 것을 후회하게 되더군요."(그는 이 질문에 대해서는 많은 말을 속으로 삼키는 듯했다.)
-이후 열성팬들의 반응을 본 느낌은 어땠나요?
"공식적인 반응을 말하라고 하면 '부담'이겠죠. 어찌 됐든 회사 측이 난감해했고, 또 차기 진행자에게 부담을 준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솔직한 심정을 말하라면 영광이고 감동이었죠. 피켓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의도를 회사 측이 제대로 알아주지 못한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사실 방송을 하는 10여년 동안 저를 아껴주시는 동호회 사람들과 단 한번도 개인적 만남을 가진 적이 없어요. 동호회에서 정기모임이나 체육대회 등 행사 때마다 '한번만 나와달라'고 애원을 해도 '방송을 그만두면 그때 몇백 명이 되더라도 제가 밥 한끼 꼭 사겠다'고 말씀드리면서 만남을 갖지 않았습니다."
◆라디오와 함께하는 김영주로 남고파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저를 아껴주는 청취자들과 함께 더 나이 들고, 함께 늙어가고 싶습니다. 눈꼽만큼이라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저 역시 힘들고 지칠 때면 20년 전 20대 시절에 듣던 음악이 그리워지거든요.(그는 이 말을 하면서 이문세의 '해바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그것처럼 누군가 외롭고 힘들 때 생각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한번은 이런 사연이 왔어요. 고교 시절 말썽만 부리던 문제아였는데 어느 날 방송을 들으면서 '나도 저렇게 세상을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래요. 그래서 고등학교도 무사히 졸업하고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이 됐다면서, 김영주씨 방송을 듣고 제가 이렇게 변했다는 걸 우리 가족들도 모두 알기 때문에 지금은 '왕팬'이 됐다고 하더군요. 정말 고마웠어요."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가슴 아픈 사연, 기쁜 사연도 참 많았을 텐데요?
(그는 사연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기억할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하나둘씩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내용이 너무 길어서 간략하게 줄인다.)
"한번은 10년째 아기가 없다며 안타깝다는 한 부부의 사연이 왔어요. 저는 늘 긍정적으로 말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꼭 생길 거예요. 귀한 것은 쉽게 얻어지는 법이 아니래요'라고 말했죠. 한참 뒤에 그 부부가 아기 백일을 맞았다며 방송국으로 떡을 보내왔어요. 이런 비슷한 사연은 참 많았어요. 반대로 어머니가 너무 편찮다는 사연도 왔었죠. '꼭 나으실 거예요. 간호하는 분이 건강해야 하니까 용기를 내세요'라고 말했는데 나중에 결국 돌아가셨다는 사연을 전하더군요. 그때는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벌써 15년째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는데, 방송인이 된 것을 후회한 적도 있습니까?
"지난해 10월 'FM 모닝쇼'를 떠날 때,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런 마음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라디오를 만난 것은 늘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전국 방송을 하고 싶으냐'는 물음에) 당연하죠. 제 자랑처럼 들릴 텐데 이야기 해도 되나 몰라.(그는 답도 듣지 않고 '자랑'을 늘어놨다. 이럴 때는 지인들이 지적하듯이 푼수끼가 넘쳐보인다.) 청취자들이 제 방송을 듣고 대구의 방송인 줄 몰랐다는 거예요. 방송 중 청취자와 연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번호를 불러주면 청취자들이 서울로 전화를 거는 겁니다. 마침 서울의 한 업체와 번호가 똑같았는데 매주 그 시간만 되면 대구에서 '방송국이냐?'면서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업무가 마비된다면서 항의를 한 적도 있어요. 그 뒤에는 꼭 '053'을 눌러달라고 잊지 않고 말합니다. 죽기 전에 전국 방송 해보면 좋죠. 잘할 수 있는데."
-앞으로 꼭 하고픈 일을 하나만 말해보라면?
(그는 대뜸 아기를 임신했을 때 이야기를 꺼냈다. 10개월 내내 입덧에 시달렸는데, 한참 심할 때에는 2시간 방송한 뒤 병원에서 8시간 링거 주사를 맞고 누워있었다고 했다. 그에게 방송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지금 장인환씨와 함께 하고 있는 '즐거운 오후 2시'(오후 2시 30분~4시, 표준FM 96.5㎒)를 통해서 장년층 청취자들과 만나는 것도 참 즐겁습니다. 여건이 허락하는 한 라디오와 함께하는 김영주로 남고 싶은 게 가장 큰 바람입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김영주는?=1967년 대구에서 태어난 뒤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 토박이. 특유의 통통 튀는 목소리와 정감있는 진행으로 대구MBC '김영주의 FM 모닝쇼'를 맡아 지난해 10월까지 14년간 붙박이 진행을 해 왔다. 1999년 안과의사인 남편을 지인 소개로 만났고, 36개월 된 딸(남유림)을 두고 있는 9년차 주부이기도 하다. 인터뷰 사진을 찍고 난 뒤 "청취자들에게 못나게 보이면 안 된다"며 사진기자 카메라를 붙들고 일일이 사진을 확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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