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푸틴 러시아 총리, 황제를 꿈꾸는가?

베이징올림픽 개막일인 지난 8일 시작된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아 공격에 가장 발끈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였다. 그는 "그루지야의 공격은 보복을 부를 것"이라 경고했고 몇 시간 뒤 러시아군의 공격이 시작됐다. 푸틴 총리는 이날 러시아의 대표자격으로 베이징에 머무르고 있었다. 러시아 헌법상 최고 권력자는 대통령이고, 외교정책도 대통령 몫이다. 그런데도 현재의 러시아에서는 대통령(메드베데프)보다 총리(푸틴)의 위세가 더 막강하다. 서방언론은 푸틴을 제정 러시아 시대의 황제 '차르'(tzar·czar)로 묘사하기도 한다. 푸틴은 차르를 꿈꾸는 것일까.

◆'상왕' 푸틴

러시아의 애매모호한 현 권력구도에 대한 우려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후계자로 40대 초반의 제1부총리 메드베데프를 후계자로 지명하면서부터 제기됐다. 러시아 헌법상 대통령의 3연임 금지 조항 탓에 어쩔 수 없이 푸틴이 대선에 출마하지 못하는 상황을 편법으로 비켜 가기 위해 대통령을 '바지사장'으로 앉히고 자신은 총리가 되어 수렴청정하겠다는 속셈이란 것이다.

메드베데프는 지난 3월 실시된 대선에서 70%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러나 이는 전 대통령을 '상왕(上王)'으로 모셔야 하는 유례없는 '쌍두 독수리'(러시아의 문장이기도 하다)라는 기묘한 권력구도의 시작에 불과했다.

총리가 된 푸틴은 내각을 자신의 친정체제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꾸렸다. 부총리를 5명에서 11명으로 늘리는 등 총리의 권한을 강화했다. 푸틴은 25명의 내각 각료회의 위원 중 15명의 장관이 참석하는 간부회의도 따로 만들었다. 대통령직속기관 5개 중에 법무와 비상대책부를 제외한 내무·외무·국방장관이 포함된 강력한 기관이니 행정부 전체를 장악한 셈이다.

그는 또한 러시아 하원의 다수 의석을 지닌 통합러시아당의 의회 위원장직도 맡고 있다. 지난달에는 '국가 우선 프로젝트' 정부위원회 위원장이 된 것은 물론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외교권까지 넘겨받았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강한 권력을 지닌 '실세 총리'로 등장한 푸틴은 '알렉산데르 2세 차르에 가깝다'는 평까지 받고 있다.

◆푸틴은 차르가 될 것인가?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올해의 인물'로 푸틴 대통령을 선정했다. 혼란에 빠져 있던 러시아에 안정을 가져온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러시아의 새로운 차르이자 표현의 자유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변수는 있다. 우선 강한 러시아 건설이라는 기치 아래 시행한 독재주의 정책으로 후퇴한 민주주의와 극심한 빈부 격차, 살인적인 물가상승률 등 국내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점이다. 지금이야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넓지만 매우 얇은 지지층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푸틴이 바로 자신의 심복으로 대통령좌에 앉힌 메드베데프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친서방적 성향이 있는 메드베데프가 취임사에서 강조한 '법치주의와 자유 확대' 등을 통해 중산층의 지지를 확보함으로써 푸틴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러시아의 정치사는 '배신의 역사'라고도 한다. 체르넨코에게 후보로 지명된 고르바초프도 공산당을 배신하고 급진 개혁을 통해 소련 해체를 불러온 전례도 있다. 과연 메드베데프가 '푸틴의 꼭두각시'로 남을지 '제2의 고르비'가 될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문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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