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또 한명의 창조자, 연출가

오페라에서 지휘자 다음으로 중요한 스태프는 연출가이다. 연출가는 흔히 생각하듯이 영화나 연극의 연출가, 즉 감독과 거의 같은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그는 전체적인 연기의 구성을 짜고 출연자들의 동선을 만들고 연기를 일일이 지시한다. 모든 출연자들의 동작과 표정은 다 연출가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또한 연출가는 오페라를 어떻게 해석할지 궁리하고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오페라 속에서 어떻게 표현할지를 연구하여 무대 위에서 구현하는 사람이다. 쉽게 말하자면 오페라에서 음악적인 것(이것은 지휘자의 영역이다)을 제외한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연출가의 책임 아래에 있는 것이다.

현대 오페라 연출에서 연출가에게 중요한 것의 하나가 무대 미술이다. 특히 현대의 오페라하우스에서는 들려주는 요소(음악)에 못지않게 보여주는 요소(미술)를 중시하여 연출가들은 점점 더 미술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오페라에서의 미술이란 요소는 다만 무대 미술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대도구, 소도구에 의상, 분장, 조명 등 모든 시각적인 것들을 망라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디자이너를 따로 두는 경우도 있지만, 적지 않은 연출가들이 무대 미술이나 의상 또는 조명 등을 직접 감독하기도 한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연출가들 중에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적지 않다. 이탈리아의 명연출가 프랑코 제피렐리는 조각을 전공하였으며, 프랑스의 명연출가 장 피에르 포넬은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다. 오페라의 미술이 2차원적, 즉 평면적인 것이 아니라 무대 위의 3차원 공간을 채우는 입체적인 작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건축이나 조각가가 유리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외에 귄터 슈나이더 짐센은 원래 조명 디자이너였으며, 로버트 카슨은 안무가였고, 피에르 루이지 피치는 의상을 전공했던 사람이다. 이렇듯 오페라 연출은 다양한 분야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점은 오페라 연출이라는 고유한 분야가 오래전부터 정착된 것은 아니라는 예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원래 연극 연출을 공부했던 사람들이 오페라에 투신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독일의 발터 펠젠슈타인을 시작으로 괴츠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에버딩, 하리 쿠퍼 등이 모두 독일 근대 연극 연출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유명 오페라 연출가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오페라를 어떤 상황으로 세팅하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즉 데이비드 파운트니는 '루살카'를 현대의 정신병동에서 일어나는 일로 만들었고, 로버스 카슨은 '일 트로바토레'를 정유공장의 노사갈등으로 묘사하였으며, 피터 셀라스가 '돈 조반니'를 뉴욕의 재벌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일로 만들었으며, 페터 콘비취니는 '로엔그린'을 중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로 재구성한 것 등이다. 이렇게 오페라 연출에서 원작의 세팅과는 달리 때와 장소를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로 자주 만드는 것은, 오페라 속의 이야기가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지금도 일어나는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더 깊은 인상과 높은 감흥을 노리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도 연출가가 악보나 가사를 손대는 일은 원칙적으로 없다. 즉 악보와 가사에는 전혀 손대지 않으며, 나머지 부분만이 연출가의 영역인 것이다. 그러므로 평범한 연출가의 공연이라면 연출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비범한 연출가라면 얼마든지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켜서 충격과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 오페라 연출이기도 하다.

박종호(오페라 연출가·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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