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얏고 울면 禪을 향한 명상이…명인 황병기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예술과 삶은 '남들과 같기'를 거부한다. 그의 음악은 전통 음악의 틀을 깨면서도 한국적 전통으로 인정을 받는다. 전통 국악인 산조에 독창적 선율을 얹어 '황병기류 가야금산조'를 만들어내면서도, 기괴한 음향과 비명이 춤을 추는 '미궁'(1975)처럼 전위적인 현대음악도 내놓는다. 그의 삶과 음악관은 어떨까. 그를 19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요즘 그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 국악 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는 29일에는 대구 봉산문화회관에서 제자 이미경(50)과 함께 '비단소리'를 주제로 공연할 예정이다.

◆가야금은 숙명 같은 것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가야금을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가야금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던가요?

"그 전까지는 가야금을 사진으로도 구경해본 적이 없었어요. 우연히 친구 따라갔다가 가야금 소리를 들었는데 깜짝 놀랐어. 저런 소리가 있나. 소리 자체도 아름답고 매력이 있었지만 그 속에 옛 할아버지의 메시지가 나오는 것 같았어요. '너 지금 뭘 방황하고 있느냐. 이렇게 좋은 우리 것이 있는데.' 그래서 시작한 거지."

-가야금이 운명이라고 생각하세요?

"나이 일흔이 넘어 돌이켜보면 가야금과 나는 숙명적인 관계라는 걸 느껴요. 내 인생의 중요한 일들은 거의 다 가야금과 연관이 돼 있지요. 1974년 이화여대 국악과 교수로 직장을 구한 것도 그렇고, 아내도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을 배우다 만났으니까. 또 1990년 남북간 분단의 벽이 높을 때 민간인 신분으로는 최초로 북한에서 가야금 공연을 했어요."

-젊은 시절에 별명이 '영감'이셨다고요?

"가야금을 좋아했던 것도 당시로서는 기행(奇行)이었고. 내가 가야금을 들고 가면 여학생들이 뒤에서 킥킥킥 하고 웃었어요. 이상한 자식이다 그랬지. 대학교 다닐 때는 고교 시절 교복을 입고 다녔어요. 입던 교복이 멀쩡했거든. 성한 옷을 대학생이 됐다고 안 입을 이유가 없잖아. 남의 이목에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었어요."

-평생을 음악가로 매진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건 언제였습니까?

"1974년. 내가 38세때 이화여대 국악과 교수로 들어가면서 죽을 때까지 음악만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국악과 교수 제안을 받고 며칠간 심사숙고하다가 '인생을 제대로 살아야겠다. 음악에 모든 것을 바쳐야겠다'고 결심을 했지요. 그동안 벌였던 사업도 다 손을 떼고. 1974년은 내 인생의 엄청난 전환점이에요. 음악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회는?

"1965년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금세기 음악 예술제'였어요. 1962년 작곡한 '숲'이 미국에 알려지면서 연주 초청을 받았어요. 정말 감개무량했지. 그때는 가야금 독주회라는 게 아예 없었어요. 국내에서도 내 가야금 소리를 듣겠다는 사람이 없을 때인데 외국에서 막대한 비용까지 지불해가며 내 음악을 듣겠다고 하니까. 그리고 최초의 독집 음반이 미국에서 출반되어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어요. 한국에서는 13년 뒤인 1978년에야 첫 독집 음반이 나왔거든요."

◆모순을 명상하는 음악

-변화하는 사회상을 음악에 담으려고 하시나요?

"모든 음악은 궁극적으로 사회가 만드는 거예요. 베토벤이 만약 제주도에 살았거나 에스키모였다면 운명 교향곡이나 월광소나타는 못 썼을 거 아니야? 나도 물론 근본에는 사회상과 밀접하게 닿아있겠지만 내 음악 자체는 대중의 취향에 맞추거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지는 않아요. 사회성을 담아 메시지를 보내는 구호성 음악은 아주 보잘것없어요. 아주 얕아."

-그럼 어떤 음악을 만들고자 하십니까?

"궁극적으로 인간의 영혼을 씻어줄 것 같은 깊은 산골의 샘물 같은 음악. 그런 음악을 만들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현대인들이 청량음료를 좋아하잖아요? 하지만 결국 찾는 것은 생수입니다. 내가 1978년에 첫 음반을 냈는데 지금도 판매가 꾸준해요. 국악 중에서는 전통음악, 현대음악 다 합해서 최고의 스테디셀러예요. 결국 샘물 같은 음악은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다시 말해 '비대중적인 것이 대중적이다'는 역설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요."

◆연주보다는 작곡에 더 의미

-작품이 많지 않은 편입니다.

"내가 굉장히 과작(寡作)이에요. 지금까지 5집을 냈는데 가야금을 한 햇수를 생각하면 굉장히 적은 거지요. 대신 하나도 실패한 게 없어요. 침향무는 아마 나 외에도 합치면 수천번은 연주됐을 거야. 내 작품은 비슷한 것도 없어요. 서양음악 모방은 절대로 안 할 뿐만 아니라 전통음악 모방도 안 해요. 그러니 작품 하나 쓰기가 어려워요. 그렇게 내가 간절하게 표현하고 싶은 걸 잡는데 오래 걸려요. 그래서 작품 하나를 구상할때 2년쯤 걸리지. 그런데 막상 작곡에 착수를 하면 2주일이면 끝나요."

-전통 악기를 통해 새로운 연주기법들을 개발했고, 서양음악적인 요소를 도입하기도 합니다.

"악보에 작곡을 한다는 자체가 서양적인 거예요. 우리 전통음악에는 작곡가 개념도 없어요. 서양 음악을 흉내낸 건 전혀 없어요. 나는 세계 어디를 가도 없는 소리, 한국에만 있고 특히 황병기에게만 있는 소리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요."

◆고정관념을 거부한다

-수염은 겨울에만 기르세요? (그의 얼굴은 다른 인터뷰 사진과 달리 말끔했다.)

"나는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수염도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겨울이 되면 기르고 따뜻해지면 깎는 거지. 덥거나 춥거나 항상 수염을 기르는 게 특이한 일 아닙니까? 여름이나 겨울이나 항상 똑같은 옷을 입는 식이잖아요. 그게 정상이라는 근거는 아무데도 없잖아요? 사람들은 그게 원칙인 줄 알지만 사실은 반대다 이거지요"

-1974년부터 34년 동안 북아현동에 살고 있으신데 왜 한번도 이사를 안 가셨죠?

"한번 갔으면 거기서 사는거지 뭐 하러 이사를 가? (변화를 싫어하느냐고 물었다.) 싫어하는 게 아니고 변화할 이유가 없는 거지. 내가 농담처럼 하는 얘기인데 1962년에 결혼을 했는데 아직까지 그 마누라랑 그대로 살아요. 집 전화번호도 1950년대 전화번호 그대로야. 국번호만 바뀌었어요. 친구도 초등학교 때 친구 그대로고."

-황병기의 음악은 늘 새롭고 독창적인 색깔을 만드는 반면, 삶은 그리 변화가 없습니다. 선뜻 이해가 안 가는데요

"지난해 출반한 '달하 노피곰'에 영국 셰필드대학의 앤드루 킬릭 교수가 해설을 했는데 제목이 '모순을 명상하는 선(禪)의 경지'야. 황병기의 음악이나 개인 모두 모순이라는 거지요. 'A'인 줄 알고 보면 'B'라는 거야' 'B'인 줄 알고 보면 'A'이고. 그래서 내 음악은 모순을 명상하는 도구라는 거지요. 내 음악은 아주 전통적이면서도 알고 보면 현대적이고, 현대적임에도 또 전통적이라는 겁니다."

-다른 음악 장르에도 관심이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서양 고전음악 팬들은 18, 19세기 서유럽의 음악만 좋아해요. 그런데 인류가 만들어 낸 음악은 상당히 다양해요.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인도, 몽골에도 좋은 음악이 많다고. 나는 재즈나 팝도 구분없이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 재즈 뮤지션 존 콜트레인을 유달리 좋아하지. 존 콜트레인의 앨범 중에 '무아(Selflessness)'라는 작품을 어렵사리 CD로 구해서 모처럼 들었는데 기가 막히더라고."

◆부부는 거리를 둬야한다

-고령이신데도 '평등부부'로 꼽히시던데요. 비결이 뭡니까? (그의 아내는 소설가 한말숙(77)씨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것. 또 상대방을 돕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를 먼저 생각해야 돼요. 우리집은 2층인데 2층 전체가 나의 생활공간이고 1층은 아내의 공간이야. 층이 달라요. 그러면서도 1층과 2층이 뚫려 있거든. 서로 거리를 두고 상대방이 하는 일을 존중해주고 그렇게 살 따름이야. 나무가 서로 붙어있으면 둘 다 죽는 거예요. 떨어져야 바람이 통해서 살 수 있어요. 흔히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는데 일심동체면 죽는 거야."

-행복하십니까?

"나는 행복한지 아닌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살지. 나는 아무 계획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그냥 충실하고 즐겁게. 계획을 왜 하냔 말이야. 현재가 수단이 돼서는 안 돼요. 목적이어야지. 우리가 정원에서 아름다운 꽃을 볼 때 이 꽃을 봐서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게 아니잖아. 사람들은 근심 걱정을 하잖아요? 그런데 근심은 대개 과거 아니면 미래야. 현재가 아니거든. 그런데 미래나 과거는 사실 유령처럼 없는 거지요. 현재만 있는 거지."

노래를 잘해 소싯적 KBS 독창회까지 했다는 그에게 애창곡을 물었다. "그런 것 없다"는 대답. 노래방도 안 가느냐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그는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받아쳤다."나는 재미있는 걸 싫어해. 재미없는 걸 좋아하지. 재미있는건 달잖아. 그게 재미없는 거예요."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 황병기는?=가야금 작곡가이자 연주가. 현대음악가.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중학교 3학년때인 1951년 부산 피란시절 가야금을 타기 시작했으니 벌써 57년째다. 그는 한국 전통음악에서 가장 독보적인 존재 중의 하나이다. 1962년 전통 음악사상 첫 가야금 곡인 '숲'을 작곡했고, 미국, 일본, 유럽 등을 돌며 해외에서 가야금 연주회를 열었다. '침향무', '비단길', '미궁', '춘설', '달하 노피곰' 등 5개의 앨범은 전통과 현대를 변주하는 독창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1974년부터 2001년까지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교수로 후학을 길러냈다. 1957년 KBS 전국국악콩쿨 최우수상, 한국영화음악상(1974), 중앙문화대상(1992), 은관문화훈장(2002), 호암상(2003)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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