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경제발전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난 8월 15일 우리는 광복 63주년과 건국 60주년을 기념하였다. 건국 후 2년 만에 일어난 6·25 전쟁의 참화를 겪고 폐허에서 일어나 오늘날 세계 13위의 경제력을 보유하면서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한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분명히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지난 60년의 경제적 성과를 몇 가지 통계지표로 살펴보면, 1인당 국민소득이 1953년 67달러에서 2007년에는 2만45달러로 약 300배, 수출액은 1948년 2천200만 달러에서 2007년 3천715억 달러로 약 1만6천900배, 자동차대수는 1948년 1만2천대에서 2007년 1천643만대로 약 1천100배, 평균수명은 1960년의 52.4세에서 2006년에는 79.2세로 늘어났다. 또한 철강, 조선, 자동차, 기계, 전자, 통신기기, 반도체 등 주요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단기간 내에 이룩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공적인 업적이며 외국에서는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후에 독립한 많은 국가들 중에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한 국가는 우리나라와 대만, 이스라엘 이외에는 별로 찾아보기 어렵다. 아시아에서는 60년대까지만 해도 필리핀이 경제적으로 상당히 발전한 국가였다. 1966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120달러였을 때 필리핀은 230달러였으며 우리나라의 건축기술이 모자라서 김포공항과 장충체육관을 필리핀 건설업체가 건축했을 정도로 필리핀은 앞선 나라였다. 그러나 지금은 필리핀의 1인당 국민소득이 1천8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여 우리의 10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지난 6월 홍콩을 방문했을 때 일요일 낮에 홍콩시내의 여러 고층빌딩 주변에 수십 명, 수백 명의 필리핀 여성들이 군데군데 모여서 먹고 쉬는 것을 보고, 안내하던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들은 대부분 홍콩의 가정에 입주하여 일하는 가정부들로서 휴일이면 이처럼 시내에 모여서 하루 종일 놀다가 일하는 집으로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들 중 상당수가 대학을 졸업한 여성이며 상당수의 여성들은 결혼하여 자녀를 남편이나 부모에게 맡기고 혼자 홍콩에 와서 일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홍콩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국가나 우리나라에도 필리핀 여성 가정부들이 다수 일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40여 년 전 우리가 부러워하던 필리핀은 오늘날 수많은 여성들이 가정부로 외국에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는 나라가 되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이 나라의 가정부를 고용하는 국가로 발전하였고, 1970년대 초까지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남한보다 높았으며 산업발전도 앞서 있었는데 오늘날 북한의 경제는 남한과 비교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식량부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탈북하는 처참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예로 보아 경제발전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만일 자유시장경제가 아닌 사회주의경제 체제를 채택하였더라면, 또한 1960, 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없었더라면, 국내외의 산업현장에서 피땀 흘려 일하던 산업역군들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더라면, 수출주도형 대외개방전략이 아닌 수입대체형 자급자족전략을 채택하였더라면, 중화학공업 육성과 재벌그룹에 의한 과감한 투자가 없었더라면, 경제안정화를 위한 구조조정과 고통분담의 어려움을 감내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경제발전을 결코 이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을 지속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하기에 달려있다'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국내외 경제여건은 과거보다 더욱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의 성공신화에 안주하여 개혁과 변신의 고통을 피해 나간다면 우리경제는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고 오히려 세계화시대의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되어 후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과감한 규제개혁과 경쟁촉진을 통하여 각 분야의 효율성을 높여 나가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획기적인 투자를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 육성해 나가며 우수한 인재양성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법질서를 확고히 정착시키고 계층 간 갈등을 해소하여 사회적 비용을 줄이면서, 경쟁에서 도태되거나 발전과정에서 소외된 계층에 대한 배려를 강화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김병일(김&장 법률사무소 상임고문·전 공정거래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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