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인 해방구' 대구 감영공원 일대 성인텍 가보니…

"춤+이성 교제, 몇천원이면 거뜬"

24일 오후 6시쯤 대구 중구 서문로에 자리 잡은 한 성인텍. 1천600㎡(약 500평) 남짓한 공간에는 중절모를 눌러쓴 백발의 할아버지부터 알록달록한 옷을 차려입은 할머니까지 수백명의 노인들이 트로트 리듬에 맞춰 '황혼의 춤사위'를 뽐내고 있었다.

쩌렁쩌렁 울려대는 음악 소리에 상대의 귀에 입을 바짝 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한쪽에서는 파트너를 찾느라 테이블 주위를 맴도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김모(65·중구 동인동) 할아버지는 "요즘 누가 공원에 가요? 입장료 1천500원만 있으면 시원한 곳에서 실컷 춤도 출 수 있고 잘 생긴 할머니도 만날 수 있다"며 "50년 지기 친구들과 일주일에 서너번은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성인텍이 '실버들의 해방구'로 각광받고 있다. 단돈 몇천원이면 하루종일 성인텍에서 춤추며 한나절을 보낼 수 있고 자유롭게 이성 교제도 할 수 있어 노인들의 발길이 성인텍으로 몰리고 있다.

오후 2시부터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김옥현(65) 할머니는 "달성공원에서 부채 하나 달랑 들고 더위와 싸우며 하루를 보내느니 여기서 춤을 추고 친구들을 사귀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중구 서문로 경상감영공원 일대에는 2, 3년 전부터 10여곳의 성인텍이 속속 생겨나면서 노인들의 대표적인 쉼터로 자리 잡고 있다. 한 업주는 "이성교제를 원하는 노인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인텍이 자연발생적으로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며 "성인텍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여 생일파티를 여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고 했다.

성인텍은 노인들의 생활리듬에 맞춰 오후 1시쯤 문을 열고 오후 7시 30분이나 8시쯤 문을 닫는다. 성인텍 한 관계자는 "평일엔 400여명, 주말에는 하루 1천명이 넘는 노인들이 이곳을 찾는다"며 "노인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운동도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문화 공간"이라고 했다.

오후 8시가 되자 일대에는 수성구와 달서구 등지의 유명 나이트클럽 앞을 방불케 하는 풍경이 벌어졌다. 10여곳의 성인텍에서 한꺼번에 빠져나오는 노인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이들을 태우려는 택시들이 좁은 소방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다. 새로 만난 할머니를 자신의 차로 태워 주려는 할아버지들과 웃고 떠들며 인근 음식점이나 술집 등으로 '2차'를 가는 커플들이 꽤 눈에 띄었다.

인근 음식점, 다방 등도 덩달아 호황을 누리고 있다. 국밥집을 운영하는 이모(55·여) 씨는 "성인텍에서 신나게 하루를 보내고 국밥 한그릇 먹고 집으로 가는 노인들이 많다"며 "성인텍이 생기고 난 후 이전보다 벌이가 훨씬 낫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인텍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엄연히 주류판매가 금지돼 있음에도 술을 파는 성인텍도 더러 있고 일부에서는 노인을 상대로 한 매매춘도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곳에는 '주대 기본 1만2천원' 이라는 광고 문구를 내건 성인텍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구대학교 홍덕률 사회학과 교수는 "경로당 등 예전의 복지시설로는 교육 수준이 높고 건강한 현대 노년층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며 "건전한 노인들의 놀이공간으로 성인텍이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행정당국의 관심과 지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키워드 : 성인텍은 성인이라는 말과 청소년들의 놀이 공간인 콜라텍(콜라+디스코텍)의 합성어다. 현행법상 성인텍은 신고제로 분류돼 개업이 자유롭고 주류판매가 금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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