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 지긋한 분들이 내심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이 혹 치매에 걸리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50대쯤 되는 사람들 중에도 미리부터 겁을 잔뜩 내는 경우가 왕왕 있다. 치매가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의 삶까지 부서뜨리는데다 누구나 그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이 더욱 사람들을 섬뜩하게 만든다. 과거엔 두뇌활동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잘 걸리는 걸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故(고) 이태영 박사의 사례가 이런 오해를 깼다. 이 박사라면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자 가정법률상담소를 통해 여성 권익 신장에 크게 기여했으며, 왕성한 사회활동 업적으로 막사이사이상까지 받은 사람이다. 한국에서 가장 똑똑한 여성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그녀도 말년엔 치매로 고통받았다.
20세기 미국의 우상이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이 병으로 사망한 것은 치매의 심각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8년의 임기를 마친 레이건이 "나는 이제 내 인생의 황혼으로 여행을 시작합니다"라고 작별인사를 했을 때 수많은 지구촌 사람들은 가슴 아릿한 연민을 느꼈다.
치매가 무서운 건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향기를 깡그리 파괴시켜 버리기 쉽다는 데 있다. 제 아무리 인텔리라 해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권력자라 해도 현재로선 백약이 무효다. 그러기에 우리 인생에서 정말 피하고 싶은 것 중 하나로 치매가 꼽힐 만도 하다.
영국 보수당 최초의 여성 당수이자 최초의 여성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82). 일명 '영국병'을 고치며 국내외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력을 과시했던 '鐵(철)의 여인'이 인생 말년을 치매와 싸우고 있다 한다. 그녀의 딸이 영국 어느 신문에 연재하는 회고록을 통해 치매 증상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밝혔다.
딸의 글을 통해 드러난 대처 전 총리의 최근 모습은 연민을 자아내게 한다. 2002년 경미한 뇌중풍을 겪은 뒤 의사 권유에 따라 대중 연설을 중단했던 그녀는 이미 5년 전 죽은 남편의 소식을 수없이 되풀이해 묻는가 하면 한 문장을 끝낼 때 그 문장의 시작부분을 까맣게 잊어버리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더러 상태가 좋은 날엔 총리 때의 일까지 또렷이 기억하기도 한다지만…. 강철 같던 여장부도 세월의 무게엔 견디질 못했던 모양이다. 이 또한 諸行無常(제행무상)인가.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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