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부모 생각] 닭둘기를 아시나요

"엄마, 제 방에 와 보세요. 비둘기가 날아왔어요."

얼마 전 큰 아이가 들뜬 목소리로 필자를 불렀다. 늘 구구거리는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 혹 비둘기가 옥상에다 집을 지었나 의심했었다. 잿빛 비둘기가 에어컨 실내기 위에 앉아 동그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있었다. 방충망을 살그머니 열어젖히고는 가까이서 비둘기와 대면했다. 그 녀석은 자기를 해치지 않을 것으로 믿었는지 전혀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얼른 불려놓은 쌀을 가지러 부엌으로 갔다. 비둘기의 아침밥을 해결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실에서 딸아이와 만나지 않았다면 그날 비둘기는 손쉽게 아침을 먹었을 것이다.

"엄마, 닭둘기 만들지 마세요." "응? 닭둘기라니?"

딸아이는 의아해 하는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비둘기가 사람들이 주는 먹이만 받아먹다 보니 뚱뚱해져서 닭처럼 제대로 날지 못해 붙은 별명이란다.

그러자 몇 년 전 석모도에서 본 풍경이 생각났다. 승객들이 배에 오르기 전에 저마다 새우깡을 한 봉지씩 사는 것이었다. 처음엔 배 위에서 간식으로 먹으려고 그러나 보다 생각했었다. 배가 바다로 나아가자 갈매기들이 떼 지어 날아올랐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드넓은 바다에 여객선 한 척, 하얀 갈매기 떼가 끼룩거리며 날아오르는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여행의 참 맛은 이런 것이라며 흥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환상이 깨져 버렸다. 사람들이 배 위에서 바다에다 일제히 새우깡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자 갈매기들이 바닷물에 머리를 처박더니 새우깡을 입에 물고는 다시 비상을 하는 것이었다. 리처드 바크가 쓴 '갈매기의 꿈'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 조나단이 오로지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만 비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높이 날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말이다. 조나단처럼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지는 않더라도 갈매기의 본능을 잊어간다는 것은 슬픈 일 아닌가. 사람들이 잠시 즐기겠다고 그들의 본능을 바꿔놓는 행위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이런 풍경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필자가 사는 곳에 '운암지'라는 못이 있다. 수변공원이 잘 가꿔져 있고 주변엔 등산로에다 체육시설까지 갖춰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는 곳이다. 운암지에는 잉어를 비롯,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데 사람들이 물고기 먹이를 던져주면서 물이 매우 혼탁해졌다. 갖가지 과자를 던져주면 물고기들이 떼 지어 몰려든다.

이 광경을 보려고 너도나도 참여하는 것이다. 비단 동물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네 가정에서도 매일 보는 모습이다. '이스라엘 어머니는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고 대한민국 어머니들은 물고기를 잡아준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빗나간 자녀교육을 빗댄 말이다. 어머니가 부재 중일 때 살아남을 수 있는 아이가 누구라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학벌지상주의에 편성해 오직 '공부'만이 살 길이라고 기본적으로 체험해야 할 일들을 가로채고 있다. 반찬 집어 먹는 시간도 벌어야 한다며 밥숟가락 위에다 반찬을 올려다 주고 양말 빨았던 일을 두고두고 칭찬하는 일을 부끄러워할 때다.

머지않아 은행나무 열매가 살구 빛깔로 변한다. 조롱조롱 매달려있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그러나 은행나무는 은행 알을 떼어내고 남은 잎마저 떨어뜨려야 한다. 겨우내 추위를 무릅쓰고 제 살을 찢어서 세상에 내보낸 싹이라 얼마나 귀한 피붙이겠느냐마는 은행알과 은행잎은 각각의 삶이 있다. 새로운 은행나무로, 거름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았기에 은행나무는 살아남을 수 있다. 이제 필자도 은행나무가 되고자 한다. 또 물고기를 잡아다주는 엄마가 아니라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는 어른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장남희(운암고 2학년 임유진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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