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법 설치 헌옷 수거함 '애물단지'

'놔두자니 골치고, 치우자니 반발이 심할 테고.'

대구 달서구청은 지난주 감삼동 일대 이면도로에 새로 설치된 헌옷 수거함 15개에 자진철거해 달라는 계고장을 붙였다. 헌옷 수거함이 길을 막아 통행이나 주차에 불편을 주기 때문. 주변에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곳이 많아 주민 신고도 끊이지 않는다. 구청 단속 공무원은 "일단 계고장을 붙여놓고 치우지만 이내 다른 곳에 다시 등장해 마치 숨바꼭질하는 기분"이라고 푸념했다.

헌옷 수거업자들이 주택가 곳곳에 설치한 헌옷 수거함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현재 각 구·군에 설치된 헌옷 수거함은 5천여개로 장애인단체에서 설치한 수거함을 제외한 절반 이상이 헌옷 수거업자들의 것이다.

헌옷 수거함은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헌옷을 재활용한다는 취지로 1998년 처음 등장했다. 대구시가 시각장애인단체 등과 협약을 맺고 헌옷 수거함을 아파트나 주택가 골목, 이면도로 등에 설치할 수 있도록 해준 것.

그러나 헌옷을 수거해 이익을 보려는 개인 업자들이 가세하면서 헌옷 수거함은 도심 곳곳에 난립하게 됐고,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자 시는 2002년 5월 헌옷 수거사업을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그 때문에 현재 헌옷 수거함은 설치·운영 모두가 불법이다.

헌옷 수거함의 관리나 철거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쓰레기 투기장소로 전락하고 있다. 전모(55·남구 대명동)씨는 "덩치 큰 헌옷 수거함 때문에 골목길 주차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헌옷을 제때 수거해가는지도 모르겠고, 좋은 일에 쓰이는지도 의심스럽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헌옷 수거함에 다른 재활용 쓰레기나 생활쓰레기가 버려지기도 한다는 것.

반면 한 장애인 단체는 "헌옷 수거함 수입은 월 300만원가량이지만 후원금이 끊어진 복지단체들에는 큰 힘이 되고 있다"며 "헌옷 수거함 관리원 10여명이 최대한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각 구·군청의 헌옷 수거함 철거 작업은 소극적이다. 한 구청 관계자는 "철거해 가지 않는 헌옷 수거함은 일단 구청에 보관하지만 수거함 주인이 돌려달라고 하면 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헌옷 수거함 관련 업무가 재활용은 청소과, 철거는 건설과가 맡는 식으로 나뉜 점도 난립을 제대로 막지 못하는 원인이다.

한 구청 관계자는 "헌옷 수거함이 쓰레기 투기장이 된 데는 주민들의 낮은 의식도 원인"이라며 "구·군별로 통일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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