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이웃사랑' 취재진은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컴맹인 엄마 대신 아이들이 보낸 이야기는 이랬다.
'안녕하세요, 저는 평리4동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예요. 저는 작년 2월 간경화 말기로 판정받은 후 결국 간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남편의 끝없는 정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중략)…하지만 너무나 많은 수술비에다가 애들 아빠도 1년 가까이는 힘든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생활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저에게는 아들이 둘 있는데 14살입니다. 저의 손길이 많이 필요할 때인데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가슴이 미어지기만 합니다….'
아이들이 보탠듯한 내용이 이어져 있었다. 'PS 신OO, 최OO이 썼습니다. 우리 엄마가 많이 힘들어해요. 엄마를 도와주세요.' 두 아이의 성씨가 다른 게 의아했다.
그래서 찾아나선 길. 뙤약볕 아래서도 곰팡내가 물씬 풍기는 대구 서구 평리동 재개발 예정지였다. 쓰레기처럼 보이는 가재도구들이 좁은 마당 여기저기 똬리틀고 있었다. 그 옆으로 14세 두 아들과 부부가 함께 몸을 누인 단칸방이 있었다. 보증금 50만원, 사글세 145만원짜리 방이었다. 지난 5월 이곳으로 이사왔다는 최용수(42)씨네 가족. 최씨는 대리운전기사로 하루 10건씩 대리운전을 해왔다. 교회에 가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하루 6만~7만원을 손에 넣어 살아왔지만 지난 4월부터는 정부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처지가 됐다. 최씨 가족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에서 지원받는 돈은 월 29만원.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부부는 한마디씩 돌려가며 사연을 들려줬다. 최씨가 부인 박연숙(40)씨를 처음 만난 건 아이들이 초교 3학년이던 5년 전. 부부는 절친한 친구였던 두 아이 때문에 만나게 됐다. 아이들이 인연을 맺었고, 아이들 때문에 부부의 인연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이전까지 내내 아이들을 따라다녔던 외로움은 '한 가정'이라는 이름 아래 녹아내렸다.
어렵사리 만든 행복은 길지 못했다. 지난해 초 박씨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주 쓰러지고 심한 피로감을 느끼던 박씨. 자다가 코피를 쏟는 박씨를 보고 최씨는 소스라치게 놀라 병원을 찾았다. 간경화였다. 큰 병원을 권하는 의사의 말에 따라 대학병원으로 간 박씨는 간이식 외에 방법이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간이식을 하려면 뇌사자가 기증하는 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쇠약해져 가는 박씨를 보며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친인척들이 직접 간이식에 나섰지만 맞지 않았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최씨가 나섰다. 같은 혈액형이라는 것만으로 "나도 할 수 있겠느냐"며 의료진에 문의했다.
다행히 이식은 가능했지만 수술비라는 난관에 부딪혔다. 이래저래 돈을 빌렸다. 7월 30일 수술을 받았다. 10시간 넘게 걸리는 대수술. 이른 아침 눈을 감아 해가 떨어진 뒤에야 눈을 떴다. 자신의 몸에 처음 칼을 대봤다는 최씨. 간이 회복되는 데 1년이 걸리지만 최씨는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다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부부의 배에는 갈랐다 꿰맨 자국이 선명했다. 무사히 적응하는 일도 수술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식받은 간이 적응하지 못하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박씨는 취재 도중에도 약을 먹었다. 하루에 먹는 약이 워낙 많아 먹어야 할 약 목록과 시간이 계획표처럼 벽 한쪽에 붙어 있었다. 굳이 약을 먹지 않아도 박씨의 상태는 짐작할 만했다. 박씨는 공기도 조심해야 해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왼쪽 팔과 다리는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혈소판이 모자라 멍이 자주 든다고 했다.
문제는 앞일. 수술을 받은 두 사람은 적어도 6개월 정도는 푹 쉬어야 한다. 게다가 부인 박씨는 최소 6개월간 약물투여와 치료, 검사를 병행해야 한다. 이전에 하루 10건씩 했던 대리운전이 가능할지 의문이지만 그래도 최씨는 "몇푼이라도 벌어야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믿음직스러운 눈길로 최씨를 바라보던 박씨는 남편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자 마스크로 가린 입을 씰룩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 뒤에야 눈물을 닦으면서 박씨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느냐"고 어렵사리 한마디를 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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