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걷고 싶은 길]대구 달성군 와룡산

청정한 기운에 금호강 풍광… 신비로운 전설까지 즐거움 더해

서양에서는 용(Dragon)이 불길하거나 못된 동물로 여겨지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용(龍)은 신령스럽고 상서로운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땅에는 산이나 마을 이름에 용자가 들어간 곳이 유달리 많다. 대구 달성군과 달서구, 서구 주민들이 즐겨찾는 와룡산(臥龍山)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해발 299.6m인 와룡산의 미덕은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데 있다. 말발굽 모양으로 달성군과 달서구, 서구에 두루 걸쳐 있어 어느 곳에서나 쉽게 산에 오를 수 있다. 등산로도 비교적 잘 정비돼 있어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와룡산을 즐겨 찾는다.

여러 등산로 중 달성 다사읍 서재리 사람들이 즐겨찾는 금호강 옆 성주사 코스를 산행기점으로 잡았다. 굵은 나무를 놓아 만든 계단을 따라 수십여 미터를 오르자 성주사가 나타난다. 작지만 단아한 멋이 느껴지는 사찰이다. 절의 왼쪽으로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가 나온다. 이 길을 따라 100미터를 가면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도림초교로 이어지는 산책로다. 길 옆으로 숲이 우거져 있고 넓고 평탄해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다.

삼거리에서 대각사로 가는 등산로를 따라 가면 대각사를 거쳐 지붕이 팔각 모양인 정자에 닿는다. 산행 시작한지 15분 가량 걸렸다. 팔각정에 닿으니 금호강을 비롯한 주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맛이 매우 좋은 곳이다. 정자 주변에는 운동기구도 서너 개 갖춰져 있다. 서재에 사는 주민들 중 일부는 왕복 30분 가량 걸리는 팔각정까지를 선호한다. 등산로가 완만한데다 우거진 소나무 등이 뿜어내는 청정한 기운, 그리고 금호강을 굽어볼 수 있는 풍광을 즐길 수 있기 때문. 고사리와 약초도 많이 난단다. 최모씨(50대 후반)는 "달성군에 사는 딸 집에 놀러왔다가 이 등산로에 매료돼 1년전 아예 서재로 이사를 왔다"며 "매일 산에 오른다"고 털어놨다.

팔각정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은 와룡산의 전설을 감칠맛 나게 풀어놨다. 아주 먼 옛날 어느 며느리가 산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시아버지에게 "산이 움직여요"라고 얘기했다는 것. 움직였던 것은 실은 산이 아니라 거대한 용이었다. 용틀임을 하며 대구 쪽으로 향하던 그 용은 여자의 한마디에 결국 대구를 바라보지 못한채 머리를 서울로 향한 모습으로 와룡산이 되고 말았다. "용의 머리가 서울로 향한 탓에 서울은 발전한 반면 용의 시선을 받지 못한 대구는 발전이 뒤처지게 됐다"는 한 아주머니의 말에는 진한 아쉬움이 배어나왔다.

그런 전설을 방증이라도 하듯 와룡산은 방천리 대구쓰레기매립장을 둥글게 감싸고 있다. 주민들이 용머리라고 얘기하는 봉우리에 올라 보면 한눈에 실감할 수 있다. 팔각정에서 용머리 봉우리까지는 등산로가 제법 가파르다. 20여 분을 걸어 용머리 봉우리에 오르자 주변 풍광이 더욱 빼어나다. 금호강의 푸른 물결, 파도치는 주변의 능선, 쭉쭉 뻗은 고속도로와 그 위를 신나게 달리는 차량 등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주민들의 얘기처럼 용머리 봉우리에서 방천리 매립장을 내려다보니 와룡산 능선이 말발굽 모양으로 매립장을 감싸안고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방천리의 옛 이름은 입안. 용의 입처럼 골짜기가 깊어 쓰레기를 아무리 넣어도 차지 않는다는 게 한 주민의 설명이다. 용머리 봉우리를 넘어 능선을 따라가다 도림초교로 내려오는데 1시간10분 정도가 걸렸다.

성주사~용머리 봉우리~도림초교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산행의 즐거움은 물론 신비로운 전설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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