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왜 또 돌아와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이모(42)씨는 이번 추석에 고향 방문을 포기했다. 인근에 대형 소매점이 들어선 이후로 매출이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는데다, 불경기가 계속되면서 손님의 발길조차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부모님 용돈은커녕 고향까지 왕복할 기름값마저 아까울 지경"이라며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가뜩이나 힘든데 추석 너마저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민족 최고의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사람들의 입에서는 '못살겠다'는 신음소리만 터져나오고 있다. 살인적인 물가와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의 긴 터널은 이미 허리띠를 졸라맬 대로 졸라맨 서민들에게 더 큰 고통을 요구하고 있다. 번듯하게 살던 중산층도, 사장님 소리를 듣던 자영업자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전 국민이 '경제'에 짓밟히고 있다.
추석 대목을 앞두고 제수용품 가격이 오르기 전에 미리 장을 봐 두려고 시장을 찾았던 강모(44)씨는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라고 했다. 조류 독감 파동 이후 계란 가격은 25%나 올라 한판(30개)에 4천원으로 뛰었고, 돼지고기 가격 역시 지난해에 비해 20% 이상 올라 600g에 1만원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강씨는 "정부가 나서 추석물가를 잡겠다고 하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겠느냐"며 "이번 추석에는 지난해에 비해 제수음식을 줄이는 수밖에는 없다"고 했다.
뛰는 물가 속에 가계 자산은 아예 반토막이 났다. 대출을 받아 어렵사리 내집을 장만한 사람들은 이중고에 빠졌다. 이자 비용이 한달에 수십만원에 이르지만 집값이 떨어져 팔려고 내놓을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인 것. 대구 수성구 시지에 112㎡(34평) 아파트를 장만한 김모(37)씨는 "막내가 집 장만했다고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지금은 집이 아니라 짐"이라며 "더 버틸 재간이 없어 지난해 퇴직한 아버지 퇴직금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라고 했다.
◆허리띠를 졸라매도 적자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수지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 2분기에 전국의 가구 중 벌어들인 소득보다 지출을 더 많이 해 적자를 낸 가구의 비율이 28%로 나타났다. 2분기를 기준으로 했을 때 200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물가의 타격은 고소득층보다는 저소득층에 더욱 강력하게 다가왔다. 소득 하위 30% 중에서는 절반(49.6%)이 적자에 허덕이는 것으로 조사됐고, 중산층에서도 4가구 중 1가구(23.7%)가 가계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었다.
벌이는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돈 쓸 일만 많은 서민들.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기본적인 씀씀이까지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니 고스란히 적자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인 이상 도시 근로자가구의 월 평균 소비지출은 241만9천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8.7%가 증가했다. 항목별로는 교육비(18.6%), 주거비(18.2%), 식료품비(10%)의 증가폭이 컸으며, 상대적으로 통신비(0.2%)와 보건의료비(1.4%)의 증가폭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관계자는 "병원 가는 것까지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생활의 고통이 커졌지만 아직 교육비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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