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림지(제천 1경)·박달재(2경)·월악산(3경)·청풍문화재단지·청풍호(4경)·금수산(5경)·용하구곡(6경)·송계계곡(7경)·옥순봉(8경)·탁사정(9경)·배론성지(10경)…."
골라가는 재미가 있다. 눈길을 사로잡는 빼어난 경치가 한 가지도 아니고 열 가지나 되기 때문이다. 제천 10경은 '청풍명월', '청풍호반'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충북 제천이 품은 10가지 비경이다. 선사시대부터 남한강을 이용한 수운이 발달하고 자연경관이 수려, 문물이 번성했던 제천은 말 그대로 '물 맑고 산 고운' 곳으로, 풍류 넘치는 문화 유적과 절경이 즐비한 고장.
'가고는 싶은데 너무 멀다'는 지레 짐작은 기우에 불과하다. 강원도 원주, 영월과 맞닿아 있는 제천은 충북 최북단에 위치해 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하루만에 다녀오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지만 중앙고속도로 개통으로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제천시내 어디라도 북대구IC에서 2시간30분이면 넉넉하다.
제천4경 청풍문화재단지
"장길산·왕건·일지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사극들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청풍문화재단지와 청풍호를 배경으로 촬영했다는 점. 제천 10경중 제4경에 이름을 올린 청풍문화재단지는 제천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 중 하나로, 주변에 KBS·SBS 촬영장까지 위치해 드라마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제천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관광지로 자리매김한 이곳은 '수몰'의 가슴 아픈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78년 4대강유역 종합개발계획으로 충주다목적댐 공사가 시작돼 청풍호(충주호)가 조성되면서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의 수몰지에 산재해 있던 문화유산을 원형대로 이전, 복원이 청풍문화재단지. 조선시대 수운의 요충지로 도호부를 두었던 청풍면은 선사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화유적들이 산재해 있었지만 충주다목적댐 건설로 물에 묻힐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았다. 결국 1980년 수몰대상지 문화유적 지표 조사를 통해 보물 2점, 지방유형문화재 9점, 지석묘 등 한강변 거석문화재를 청풍문화재단지 자리에 옮겨왔고, 뒤이어 1983에는 한벽루를 비롯한 도호부 건물과 청풍향교·불상·전통양식의 민가와 비석까지 이전을 마쳤던 것.
8만5천평에 이르는 광활한 청풍문화재단지 전체를 한 눈에 감상하려면 해발 373m의 망월산 정상에 위치한 망월산성과 망월루를 오르는 게 좋다. 삼국시대 이전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진 유적으로, 둘레 500m에 가장 높은 곳이 4m쯤 되는 작은 석축산성이다. 단지 입구부터 산성까지는 약간 가파르긴 하지만 정상에 올라서기만 하면 문화재단지, 드라마촬영장은 물론 청풍호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제천1경 의림지
청풍문화재단지를 빠져나와 시내를 관통한 뒤 용두산 끝자락으로 달려가면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저수지로 알려진 제천 의림지가 나타난다. 축조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구전에는 신라 진흥왕(540~575년)때 악성 우륵이 용두산에서 흘러 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이 못의 시초라고 전해오며, 그 후 700년이 지난 조선 세종 때 현감 박의림이 수백관이 넘는 큰돌을 네모로 다듬어 여러층으로 쌓아 올려 수문기둥을 삼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산골짜기에서 흘러 들어오는 흙과 모래를 서쪽 끝자락에 있는 용추폭포를 통해 홍류동쪽으로 내뱉는 의림지는 수백년 묵은 노송들과 수양버들이 어우러져 풍치를 더하는 곳. 아름드리 소나무가 좌우로 울창하게 아치를 이룬 산책로는 데이트 코스로 그만이다. 예전에는 진섭헌·임소정·호월정·청폭정·우륵대 같은 정자와 누각이 마련돼 시인묵객을 맞았다고 전해지는 이곳엔 지금도 영호정과 경호루가 남아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예부터 다섯가지 빛깔을 가진 붕어와 순채가 이곳의 특산물로 이름 높았고, 요즘에는 호수에서 나는 공어(空魚), 산천어가 유명해 매년 겨울철마다 강태공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제천10경 배론성지
제천 봉양읍 구학리에 위치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한번쯤 둘러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배론(舟論)이란 지명은 이곳 지형이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으며, 한국천주교회 초기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숨어 들어와 공동체를 이루면서 유서 깊은 신앙성지로 자리를 굳혔다. 우리나라 천주교 성직자 양성을 위한 첫 신학교 '성요셉'(1855년)의 설립지이기도 하며 한국천주교의 재건과 신앙의 자유를 위한 백서를 중국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에 보내려다 1801년 체포돼 순교한 황사영(알렉시오) 토굴이 유명하고, 김대건 신부에 이은 우리나라 두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의 묘가 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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