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後漢(후한) 때의 班昭(반소.48~117)는 중국 역사상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韓書(한서)'를 오빠 班固(반고.32~92)의 뒤를 이어 집필, 완결시킨 여류 학자였다. '女誡(여계)'의 저자이기도 한데 여기엔 부녀가 갖춰야 할 '四德(사덕)'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 즉 단정하고 법도 있는 행실을 강조한 婦德(부덕), 때와 장소를 가리는 진중한 말을 강조한 婦言(부언), 깨끗한 옷차림과 몸가짐의 婦容(부용), 집안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가르치는 婦功(부공) 등이다. 특히 '婦功'에 대해서는 '베 짜는데 전심을 다하고, 놀이나 공담을 즐기지 않으며, 음식을 잘 차려서 손님을 대접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奉祭祀 接賓客(봉제사 접빈객)'은 우리사회에서도 여성의 최대 의무 중 하나였다. 음식을 잘하는 것은 그만큼 여성에게 중요한 과제였다. 우리 속담에 '미인 아내는 소박맞아도 음식 잘하는 아내는 소박맞지 않는다'했다. 서양에서도 '얼굴 예쁜 아내의 남편은 3년이 즐겁고, 요리 잘하는 아내의 남편은 30년이 즐겁다'는 속담이 있는 걸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의 음식 솜씨가 매우 중시됐던 것 같다.
1600년대 경북 영양 석보면 두들마을에 살았던 貞夫人(정부인) 안동 張氏(장씨.1598~1680)는 신사임당과 더불어 조선시대 대표적 현모양처로 꼽히는 인물이다. 이문열 소설 '선택'의 실존 인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글씨와 그림에 능했다는데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어 1670년 일흔을 넘은 고령에 '음식디미방'이라는 조리서를 펴냈다. 한글로 쓰인 최초의 조리서이자 조선을 넘어 동아시아에서 여성이 쓴 첫 조리서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전래의 조리법과 장씨 부인이 스스로 개발한 음식 등 146가지의 음식 조리법과 조리기구 사용법까지 꼼꼼히 기록돼 있다. 17세기 조선 양반 집안의 식생활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귀한 자료다.
'음식디미방'이 다큐멘터리로 재현될 모양이다. 경북도가 한류 음식문화 콘텐츠 개발을 위해 영양군과 공동 제작, 올 연말께 방송 전파를 탈 예정이라 한다. 330여 년 세월 건너편의 우리 음식은 어떤 맛이었을까. 패스트 푸드'정크 푸드가 넘치는 이 시대에 슬로 푸드로 다가올 장씨 부인의 손맛이 궁금해진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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