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재 & 문화] 모조 다보탑

경주 반월성의 남쪽에 자리한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전시구역에는 한 쌍의 다보탑과 석가탑이 나란히 서 있다. 물론 한눈에 봐도 '짝퉁'인 티가 나는 모조 다보탑과 모조 석가탑이다.

불국사 대웅전의 앞마당도 아닌 데서 난데없이 만나는 이 석탑들의 존재가 영 어색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만한 공간에다 가짜 석탑들을 둘씩이나 배치해놓은 사실 자체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도 명색이 국립박물관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면 진품도 아닌 이러한 모조 다보탑이 박물관의 야외전시구역에 버젓이 전시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 연유를 거슬러 올라가 보았더니, 이 석탑의 건립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벌써 35년도 더 된 시절의 일이지만, 1973년 1월 15일에 당시 경제기획원에서 경주종합관광개발사업에 대한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풍화작용을 심하게 입고 있어 보존이 어려워지고 있는 다보탑을 국립박물관에 옮기고 그 모형을 불국사에 세우는 방법과 원형은 그대로 두되 모형을 다른 장소에 세우는 방법을 연구해보라"고 지시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이에 문화재관리국에서는 때마침 신축공사 중에 있던 경주박물관의 뜰에 다보탑 모조품을 만들어 세우기로 결정을 보았는데, 다보탑은 풍화상태가 심한데다 일제 때의 잘못된 수리공사로 시멘트 접착이 되어 있어 해체작업이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다만, 석가탑의 경우 보존상의 큰 문제는 없었다고 결론이 지어졌으나 차제에 다보탑과 함께 모조석탑을 만들기로 했던 모양이었다.

그 후 1975년 7월 2일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여 국립경주박물관의 신축개관식이 거행될 때에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을 그대로 재현한 모조석탑의 준공제막식도 동시에 이뤄지게 되었다. 모조석탑 옆에 놓여진 '신건기'는 기존의 석탑과 석질이 같은 월성군 외동면 북토리의 화강암이 채취되어 새 석탑의 재료로 사용되었다고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로부터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또 다른 모조 다보탑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호암미술관이 그 주체였다. 1981년에 삼성미술재단이 용인자연농원에다 미술관을 건립하면서 야외조각공원에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예술품으로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과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을 각각 본떠 만들어 세우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지금이라면 그럴 필요도 없지만 문화재위원회의 심의까지 거쳐 해당 문화재의 복제허가를 받았고, 이에 따라 실물크기의 다보탑이 이곳에도 만들어져 지금껏 잘 보관되어 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모조 다보탑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예술은 모방에서 나온다거나 모방은 제2의 창조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이건 숫제 판박이 복제품을 만들어내는 수준이니까 설령 정밀하게 잘 만들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어떠한 미술사적인 가치를 지닌다거나 세월이 한참 흐를지라도 문화재로서의 의미가 큰 것이라고 온전하게 인정되기는 어려울 듯싶다.

그나마 이러한 복제품조차도 최소한의 희소성이 유지되어야만 장차 원본 석탑의 훼손이나 파괴에 대비하는 존재이유가 더욱 빛이 날 텐데, 지금은 그런 것과도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인다. 국도변에 즐비한 대형석물공장마다 모조품 다보탑 한둘쯤은 갖춰놓고 있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이미 세상은 무수한 '짝퉁' 다보탑들로 넘쳐나고 말았으니까 하는 소리이다.

이제는 너무 흔한 것이 탈이라면 탈이 된 셈이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얘기가 이래서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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