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게 막을 내린 2008 베이징올림픽. 이번 올림픽에서 눈길을 끌었던 건 특정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낸 흑인들의 활약이었다. 자메이카는 우사인 볼트를 앞세워 100m, 200m, 남자 400m계주를 석권했다. 여자 100m에서도 금·은·동메달을 휩쓸었다. 케냐는 남자 3천m 장애물 경기에서 키프로프가 대회 7연패에 성공했고, 마지막날엔 완지루가 마라톤 금메달을 따냈다. 당연한 듯 금메달을 가져간 미국 농구대표팀 '리딤팀'도 모두 피부색이 검었다. 반면 마이클 펠프스가 사상 첫 8관왕에 오른 수영에서는 박태환과 기타지마 고스케가 잇달아 우승하며 백인의 벽을 깬 반면, 검은 피부는 400m 자유형 릴레이에 미국 대표팀으로 출전, 금메달을 안은 컬렌 존스(24)가 유일했다. 이처럼 특정 종목에서 흑인이 두각을 나타내자 흑인의 유전적 특성이 큰몫을 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스포츠뿐만이 아니다. R&B나 힙합, 재즈, 블루스 등 흑인음악은 목소리와 리듬감에서 흉내조차 내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환경적인 요인일 뿐 생리학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과연 흑인들의 신체에는 신이 내려준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일까?
◆그들은 뭔가 다르다?
자메이카 선수들이 단거리를 제패하자 일반인에게 생소했던 근육 성분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자메이카와 서부 아프리카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많이 발견된다는 '액티넨 A'였다. 액티넨 A는 근육의 빠른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단거리 육상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킹스턴 공대 에롤 모리슨 교수는 자메이카인 중 70%는 근육에서 액티넨A가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호주는 30%만 이 성분을 갖고 있었다. 결국 자메이카인들은 선천적으로 잘 뛰도록 태어났다는 뜻이다.
체형이나 근육의 형태도 달리기에 적합하다. 체형은 외배엽과 내배엽, 중배엽 등 3가지로 나뉜다. 외배엽은 상하체가 마른 체형, 내배엽은 전체적으로 골격이 튼튼하고 큰 체형이다. 흑인들은 주로 외배엽이 많다. 반면 백인들은 대부분 중배엽이지만 아시아인에 비해서는 내배엽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다리가 길고 머리가 작은 점도 흑인들이 달리기에 역학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한다. 특히 머리 자체는 달리기에 있어서 무의미한 부분이기 때문에 작은 게 적합하다. 하지만 체형 때문에 다리가 짧고 중심이 낮을수록 유리한 역도에서는 큰 힘을 쓰지 못한다. 또한 흑인은 근육의 밀도가 높고 체지방이 적어 물에 잘 뜨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다. 물에 잠기는 부위가 많다 보니 물의 저항을 많이 받는다는 것. 또한 흑인의 머리카락이 짧고 굽어 안으로 파고들기 때문에 수영 시 물의 저항을 받으면 통증을 느끼는 탓도 있다.
근육의 성격에서도 차이가 난다. 근육 섬유의 구성 비율은 아프리카계 흑인과 북중미계 흑인도 차이를 보인다.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경우 근육에 지근섬유가 많고, 헤모글로빈이 많아 산소 운반 특성이 뛰어나다. 케냐, 에티오피아 등이 장거리에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다. 반면 북중미 지역의 흑인들은 단시간에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도록 짧고 굵은 근육이 발달해 단거리에 더 적합하다는 것. 김기진 계명대 체육학과 교수는 "신체적 특성은 유전적 경향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후천적인 훈련만으로는 인종의 본질적인 특성을 극복하기 힘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흑인은 성대도 다를까. 재즈와 블루스, R&B, 힙합 등 흑인 음악은 다른 인종은 따라하기 힘든 그들만의 특징이 있다. 호흡이나 박자감도 다르고 R&B 특유의 콧소리나 창법도 너무나 자연스럽다. 반면 백인들은 인위적으로 '꺾는' 창법을 구사하기 때문에 '블루 아이드 솔'(blue eyed soul)이라고 불릴 정도다. 이처럼 독보적이면서 뛰어난 음악성을 지닌 흑인들이지만 헤비메탈이나 하드록에서는 흑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록 음악에서도 지미 헨드릭스, 프린스, 레니 크라비츠 정도를 꼽을 수 있을 정도다. 특히 록 음악의 창법도 백인들은 성량이 크고 기교보다는 내지르는 샤우팅 창법을 구사하는 반면, 흑인들은 기교적인 면이 강하다.
이를 두고 흑인들이 혀의 두께나 입술, 입틀의 모양 등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흑인의 경우 목소리를 만드는 성대의 점막이 두껍기 때문에 소리를 낼 때 강한 호흡이 필요하고 굵고 낮은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환경적인 요인일 뿐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의학적으로 인종 간의 차이보다는 개인 간의 차이가 더욱 크다는 것. 인간집단유전학자 카발리-스포르차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유전자, 사람 그리고 언어'에서 "인종 간의 신체적 차이는 기후와 풍토 등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표피적인 변이를 보여줄 뿐"이라며 "문화적 차이를 근거로 한 인종 분류나 차별은 무지와 맹목"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유럽인 중 3분의 2는 아시아인이고, 3분의 1은 아프리카인"이며 "미국의 경우 백인과 흑인 유전자 혼합이 북부에서는 거의 50%, 남부에서는 10%, 전체적으로 평균 30%에 이른다"는 것이다.
경제력의 차이도 흑인들이 특정 종목에 치중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수영이나 골프 등은 축구나 농구, 육상 등에 비해 강습비가 많이 들고 큰 돈을 벌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가난한 흑인들이 외면한다는 것. 대신 농구나 미식축구, 축구, 야구 등은 슈퍼스타가 아니라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남자 평영 100m 금메달리스트인 던컨 굿휴(51·영국)는 "오직 예닐곱 명의 수영선수만이 은퇴 후에도 풍족히 쓸 수 있는 만큼의 돈을 번다"고 말했다.
수영이 꼭 백인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뛰어난 성적을 올린 흑인 수영선수들도 적지 않다. 수리남의 안토니 네스티는 1988년 서울올림픽 100m 남자 접영에서 7관왕을 노리던 미국의 매트 비욘디와 독일의 미하엘 그로스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바 있다. 또한 흑인 혼혈인 앤서니 어빈(미국)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자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땄다. 베이징에서도 미국 수영팀의 컬렌 존스(24)가 400m 자유형 릴레이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타이거 우즈는 백인의 전유물이던 골프에서 황제에 등극했고, 비너스·세리나 윌리암스 자매는 테니스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박승한 영남대 체육학부 교수는 "환경적, 성격적 차이일 뿐 근육 자체의 성질이 다르다고 보긴 힘들다"며 "흑인은 직업 선택의 폭이 좁고 사회적 약자에서 벗어날 방법이 많지 않기 때문에 스포츠에 열을 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흑인의 성대가 동양인의 성대와 다르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소리를 내는 방식과 성대의 구조는 인종 간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 성대의 경우 어린아이와 성인의 길이 차이가 5㎜에 불과할 정도로 미묘한 차이에도 목소리는 변하기 때문에 개인 차가 더욱 크다는 것이다. 권도하 대구대 언어치료학과 교수는 "성대보다는 발성법의 차이가 음악적 차이를 만들고, 딸이 어머니의 말투를 따라하듯이 성장 과정이 흑인 특유의 리듬감과 말투를 갖게 만든다"고 말했다.
실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유전적이기보다는 환경적인 요인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러시아나 북유럽 등 추운 지방의 백인들의 경우 덩치가 크기 때문에 성대도 길어지고 추운 날씨 때문에 굵은 소리를 내는 경향이 있다. 반면 베트남이나 태국 등 더운 지방 인종은 작은 체격에 활동적이다 보니 높고 가는 소리를 낸다는 것. 같은 흑인이라도 아프리카 흑인의 목소리는 높고 가늘지만, 북중미의 흑인들은 낮고 굵다. 안철민 프라나 이비인후과 원장은 "성대의 구조는 인종 간 큰 차이가 없을 뿐더러 목소리의 경향을 성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며 "결국 개인 차나 환경적인 요인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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