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는 外大와 통한다" 한국외국어대 박철 총장

한국외국어대학교에는 경상도 학생들이 유독 많다. 넷 중 하나는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경상도 사람이 외국어에 약하다'고 들어 온 기자에겐 생경스러웠다.

박철(朴哲·58) 총장은 "경상도에 대구 부산 마산 등지 국제 도시가 있어 그런 국제적 분위기 영향으로 진취적 젊은이가 많은 게 아닌가 한다"고 풀이했다.

거기다 학부모와 선생님들의 특수한 외국어 교육을 하는 한국외대에 대한 선호도도 요인으로 꼽았다. "최근 대구 부산에서 고교 교장선생님들을 모시는 자리를 가졌는데 참석자가 지난해보다 훨씬 많아 조금 놀랐습니다. 주로 어떻게 하면 많은 학생을 합격시킬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어요."

한국외대는 글로벌 인재 육성을 지향한다. 학생들이 뜻만 있다면 누구나 외국 생활을 경험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7+1제도'와 재외 공관이나 해외무역관에서의 인턴십 제도 도입 덕분이다. 그래서 캐치프레이즈도 '한국외대를 만나면 세계가 보입니다'이다.

'7+1'은 4년 8학기 가운데 1학기는 외국 대학에서 유학하는 제도로 지난해에만 400명의 학생들이 해외로 떠났다. 올 2학기에는 2007학년도 전체 입학생의 상위 10% 전원을 해외에 보낼 계획이라 유학생 수가 500명으로 늘어난다.

재외 공관과 해외무역관 6개월 인턴십은 생생한 외국 경험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취업에도 유리해 학생들이 매우 선호하고 있다 한다. 1년에 140명이 세계 각지에서 준외교관으로 일하는 셈이다. 학생들의 학점은 대사나 무역관장이 준다니 재미있다.

박 총장은 "요즘 학생들이 정말 학교 다닐 맛이 펄펄 난다며 좋아한다"면서 "졸업생들이 너무 일찍 졸업한 게 후회된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고 전했다.

'이중전공제'와 '2개 외국어 졸업 인증제'도 한국외대의 차별화 전략이다. 학생들은 무조건 외국어와 비외국어 전공을 이수해야 한다. 진로 선택의 폭을 넓혀 주기 위해 도입됐다. 외국어도 영어와 제2외국어를 반드시 공부해 학교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종합하면 한국외대에서 제대로 공부한 학생은 전공이 영어과+경제학과 등 2개이고, 영어와 제2외국어를 유창하게 쓰고 읽고 말하고, 1학기는 최소한 외국 생활을 한 글로벌 인재가 된다.

이중전공제 등 차별화 정책은 2006년 2월 '돈키호테'란 별명을 가진 박 총장이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한국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한 그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완역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엉뚱한 돈키호테가 아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고, 꿈이 있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는 불굴의 돈키호테다. 대학을 새롭게 만들려 끊임없이 고뇌하고, 새로운 꿈을 부단히 만든다.

"변해야 삽니다. 60, 70년대에 한국외대는 외국어 하나만을 가르쳐도 경쟁력이 있었지만 80년대 개방화 이후 세상이 바뀌었어요. 우리나라가 3만달러, 4만달러 시대를 열려면 많은 젊은이들이 적어도 2개 외국어는 해야 합니다."

외국어 예찬은 계속됐다. "얼마 전 아르메니아 총장이 들렀는데 러시아어 그루지야어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5개 외국어를 필수적으로 가르친다기에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생존을 위해서라고 합디다. 공감했습니다.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선진화하려면 젊은이들이 해외로 나가야 합니다. 말도 못하면서 무작정 나가면 안 되고 외국어와 외국학 하나 정도는 배워 나가야지요. 외국어를 알면 빈털터리로 나가도 성공할 수 있지만 모르면 수백만달러 가져가도 성공 못 합니다."

42개 언어를 가르쳐온 한국외대는 내년부터 우크라이나어과 몽골어과 터키아제르바이잔어과를 추가해 45개 언어를 가르치게 됐다.

40여년 전 한국외대에서 미지의 언어였던 스페인어를 공부해 성공한 박 총장은 "아프리카어 불가리아어를 공부하면 20년, 30년 후에는 반드시 성공한다"면서 "머리 좋은 젊은이들이 한국외대를 발판 삼아 해외로 나가라"고 힘주어 말했다.

동대문구 이문동과 용인에 캠퍼스를 가진 한국외대는 인천 송도에 제3캠퍼스를 지을 계획이다. 이른바 송도글로벌캠퍼스 구상이다. "인천시와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학생과 한국어와 한국학을 배우러 오는 학생이 함께 공부하게 될 겁니다. 송도글로벌캠퍼스가 성취되면 한국외대는 국내 대학이 아니라 세계 대학과 경쟁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 외교관학교가 없는 것을 박 총장은 아쉬워한다. "유럽 미국에 외교관학교가 있어 우리 외교관들이 유학 갑니다. 다른 나라 외교관들이 와서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있어야지요. 외무고시만 봐서 외교관을 뽑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나라가 그 정도 레벨은 됩니다. 보고서를 만들어 정부에 건의할 생각이에요."

지난 2003년까지 8년간 배재대 총장을 역임한 박강수 바르게살기중앙협의회장의 동생인 박 총장의 꿈이 어디까지 닿을지 궁금해진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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