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여수항에서-도광의

꾀꼬리 목청이 바다에 빠지는 여수항

시드니오페라하우스를 옮기지 않더라도

麗水는 이름대로 아름답다

이미자는 삼백 리 한려수도 그림 같다지만

무덤이 점점이 떠있는 검은 섬들이

주검이 어릿어릿 떠도는 고혼(孤魂)들이

여자가 남자를 호리는 고혹(蠱惑)의 바다

때로는 미백(微白)으로

때로는 파랑(波浪)으로

S라인 선연(鮮姸)한 여수 미항(麗水 美港)은

눈물 그렁그렁 도는 감청(紺靑)의 바다이다.

얼마 전 누가 전화기로 시 한 편을 쥐여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살펴보니 간간짭짤한 바닷바람 묻어있는 순정한 마음 한 폭. 생경한 한자 드문드문 박힌 본문에 시제도 고전적으로 '여수항에서'이다. S라인 선연한 미항 여수항 그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나. 이름이 환기하듯 여수는 여성성을 지닌 항구. 고혹적인 미소로 여행자를 녹여버린다.

이런 자리에 어찌 술 한 잔이 없으랴. 여기에 어울리는 술은 물론 막걸리. 젓가락 장단에 싣는 이미자의 뽕짝이 짝이다. 나직한 가락은 미백으로, 격정적인 부분은 파랑으로 소용돌이치니, 마치 바다를 떠도는 고혼들이 노래를 부르는 듯. 아리따운 가객의 지난한 삶과 자신의 지난 세월이 겹쳐 마음 약한 시인은 자꾸 술잔을 비워내고…….

몽환적이었던 그날 밤 그 장면을 잊지 못한 노시인에 의해 미항 여수는 또 하나의 빼어난 심상을 얻었으니, "눈물 그렁그렁 도는 감청의 바다"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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