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병휘의 교열 단상] 그러모으다

미국 대통령선거 민주당 후보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29일 공식 지명됐다. 클린턴 힐러리 상원의원과의 치열한 당내 경선을 통해 당 후보로 확정된 지난 7월 오바마 관련 기사 한 토막.

"클린턴 힐러리는 9일 밤 뉴욕에서 열린 버락 오바마의 선거자금 모금행사에서 410만 달러가 걷히는 데 비중 있는 역할을 했다는 게 미국 언론들의 보도다. 10일에도 오바마 캠프는 50만 달러를 그러모았다."

오바마의 선거자금 모금행사 기사가 나간 뒤 '50만 달러를 그러모았다'가 '끌어모았다'의 잘못이 아닌지를 지적(?)받았다. 국어사전 한 번 찾아봤으면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생각하며 이 문장에서 '끌어모았다'는 '그러모았다'의 잘못임을 설명했다.

우리말이 어렵다고 다들 말한다. 맞춤법 표기가 헷갈리기도 하지만 말하는 것과 실제 글씨로 쓰는 것과 다른 경우가 제일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러모으다'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모으다'는 흩어져 있는 사람이나 사물 따위를 거두어 한곳에 모으다, 이러저러한 수단과 방법으로 재물을 모아들인다는 뜻이다.

"마당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는 나뭇잎을 한곳에 그러모았다." "가난하게 자란 그는 자기 자식에게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그러모았다." 등으로 쓰인다.

우리가 종종 사용하는 '끌어 모으다'는 '남의 관심 따위를 쏠리게 하다'의 뜻인 '끌다'와 '모으다'가 활용된 것으로 "흥미를 끌어 모으다."로 띄워 쓴다.

'그러모으다'와 비슷한 뜻을 가진 '긁어모으다'가 있다.

'긁어모으다'는 물건을 긁어서 한데 모으다("낙엽을 갈퀴로 긁어모으다."),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아들인다("백성의 등을 쳐서 재물을 긁어모으다." "공갈 협박으로 돈을 긁어모으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긁어모으다'는 부정한 방법을 사용해 모으는 것으로 '그러모으다'와 구별해야 한다.

'그러모으다' 외에 '끌어내리다, 끌어내다, 끌어넣다, 끌어당기다, 끌어대다, 끌어들이다, 끌어올리다, 끌어안다'는 '그러-'가 아닌 '끌어-'임을 알아두면 좋을 듯.

'그러모으다'와 같이 말과 표기가 다른 것으로 '거치적거리다'가 있다.

'거추장스럽게 자꾸 여기저기 걸리거나 닿다'는 뜻으로 '걸리적거리다'를 쓰는데 '걸리적거리다'는 '거치적거리다'의 잘못된 표기이다. 예를 들면 "그는 자기가 아무것도 거치적거릴 것 없는 자유인이란 사실에 상당한 긍지마저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낙엽을 '끌어모으지' 말고 '그러모으고' 방해물에 '걸리적거리지'않게 하는 것이 아닌 '거치적거리지' 않게 치워버리자.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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