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해자는 없다?…초교 집단성폭력 수사 마무리

대구 초교생 집단 성폭력 사건이 발생 4개월여 만에 검경의 수사 종결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100여명의 가·피해 학생들이 조사받고 전·현직 교장 등 교직원 13명이 징계를 받는 등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번 사건은 아무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끝나 찜찜한 뒷맛을 남겼다. 검경의 수사 잘못, 사회적 합의 실패 등으로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이상한 사건이 됐다.

◆석연찮은 결말?

대구지검 서부지청 형사2부는 1일 "초교생 성폭력 혐의로 구속됐던 A(14)군 등 중학생 3명에 대해 지난달 29일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A군 등은 지난 4월 21일 대구 서구의 한 중학교 운동장에서 여 초교생 8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지만 이번 사건과는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검찰조사 과정에서 당초 경찰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하고 혐의를 부인한데다 사건이 발생한 시각에 PC방에 있었던 사실이 CCTV를 통해 뒤늦게 밝혀지면서 알리바이가 입증돼 5월 말 풀려났다. 검찰 측은 "이후 3개월간 보강수사를 진행했지만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들 3명은 현재 절도 등 다른 죄로 소년원에 수감 중이다.

수사를 맡은 서부경찰서는 A군 등 외에도 8명을 가해자로 지목했지만 이 중 형사 미성년자 5명은 풀려났고, 촉법소년 3명은 역시 절도죄로 가정법원에 송치됐다. 결국 가해자로 지목된 11명 모두가 이번 사건과 관계없이 다른 죄로 송치됐거나 풀려났다.

파문이 확산되면서 성서경찰서가 2개 초교의 학생 94명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5명의 성폭력 피해 학생과 8명의 가해 학생을 지목했지만, 지난달 29일 검찰의 내사 종결 지휘로 큰 소득 없이 끝났다.

경찰 관계자는 "가해 아동들이 어리고(만12세 미만의 촉법소년), 피해 아동 보호자들이 '피해사실이 없다'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해 수사 자체가 어려웠다"면서 "피해 학생 측에서 수사 재개를 요구하는 경우에만 재수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남긴 교훈은?

이번 사건이 몰고 온 사회적 파장은 엄청났다.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공동대책위가 꾸려져 진상 조사에 나섰고, 학교 당국에서는 해당 학교 전·현직 교장, 교감 등을 징계처분했다. 경기도 안양 혜진·예슬 양 납치살해 사건, 일산 여초교생 납치 미수 사건 등으로 어린이 대상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여서 파장은 더했다. 학교와 경찰이 추가 피해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조사 대상을 확대하면서 "해당 학교 학생들을 더 자극해서는 안된다"는 반대 여론이 일기도 했다.

특히 구속됐던 A군 등 3명이 석방되면서 경찰의 수사도 도마에 올랐다. 공범으로 지목된 학생들의 말만 믿고 구속까지 했지만, 알리바이 입증으로 무혐의가 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었다.

공동대책위 남은주 대구여성회 사무국장은 "아동 성폭력에 대한 수사 매뉴얼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성폭력 피해 아동들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아동 인권 침해 요소가 많았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교 성폭력 교육을 내실화하고, 성폭력 피해 발견·상담·처리 등을 체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검찰의 수사종결과 관련해 향후 대책을 논의 중이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형사미성년자와 촉법소년=현행 소년법상 촉법소년(觸法少年)은 지난해 12월 법 개정(올해 6월22일부터 시행)으로 종래 만12세 이상~만14세 미만에서 만10세이상~만14세 미만으로 대상이 넓어졌다. 촉법소년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며 가정법원으로 송치돼 보호처분 등을 받게 된다. 형사미성년자는 법적으로는 만14세 미만을 일컫지만 일반적으로는 촉법소년보다 어린 만 10세 미만을 지칭할때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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