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이과두酒

40여 년 전만 해도 우리 농촌 아이들에겐 중학교 진학조차 뜻대로 안 됐다. 겨우 열서너 살 된 여자아이들은 그 대신 '홀치기' 틀을 붙들고 앉아 씨름하곤 했다. 어깨 정도 되는 높이의 나무틀 끝에 낚시바늘 같이 날카로운 쇠고리를 단 그것으로 비단 천에 올을 뜨는 홀치기는 당시 우리나라 외화 획득에 더없이 중요한 산업활동이었다. 그럴 때 남자아이들은 드물잖게 도시로 나갔다. 마침 증가세에 있던 공장으로 가 '시다'가 된 경우가 있고, 식당 같은 데로 가 '뽀이'가 된 경우도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추석은 그렇게 흩어져 살게 된 어린 친구들이 만나 낯선 세상 경험들을 주고받는 귀한 기회였다. 이야기의 중심엔 자연스레 도시로 나간 친구들이 서게 되고, '뽀이' 친구는 그 중에서도 주목받는 주인공이 되기 일쑤였다. 다른 아이들은 영양이 부실하고 햇볕에 그을려 가무잡잡한데 비해, 그는 모두 선망하는 바 허옇게 살이 오른 얼굴을 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배갈' 같은 술 이름을 널리 전파하는 역할을 한 것도 그 '뽀이' 친구들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나중에 익숙잖은 중국집에 들어서면서도 호기롭게 "배갈 한 병" 하고 외쳐댈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주워듣기라도 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정작 식탁에 내어진 병에는 '배갈'이 아니라 '수성고량주'라 씌어 있어 혼란스러웠다던 친구가 있었다. '高梁(고량)'은 수수이고 고량주는 바로 수수 술이며, 배갈 혹은 바이주(白酒)라 불리는 중국 소주는 거의 고량주여서 두 이름이 흔히 혼용된다는 사실까지는 전해 듣지 못한 결과였다.

'수성고량주'는 1960년대 많이 팔리던 국산 배갈이었으나 진작 가격 경쟁에 져 사라졌다. 대신 십 수년 전부터 중국집에서 우리를 맞는 것은 '二鍋頭酒'(이과두주'얼궈터우지우)라는 베이징(北京) 산 수입 배갈이다. 중국 고량주에는 우량예'마오타이 같은 고급품도 많으나 어딜 가든 서민 술은 역시 값이 싸야 제격인 것이다.

한 열흘 지나면 다시 추석이다. 하지만 함께 자란 친구들 중 고향을 찾는 사람은 그 사이 많이도 줄었다. 그 부모들이 점차 세상을 떠나면서 태어난 곳과의 연줄마저 끊긴 때문이다. 이렇게 점차 줄들이 끊어지면서 하릴없이 날리다가 제각각 흩어지고 사라져 가는 게 우리네 인연이고 인생인가 봐…, 문득 가을 바람이 더 소슬하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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