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소통과 화합의 통로 '품질분임조'

우리 속담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협력하면 일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선조들의 지혜는 농번기나 경조사 때 품앗이 또는 두레라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을 만들었다. 수많은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했듯이 생활의 어려움도 合心(합심)하여 해결하는 전통이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다.

장소와 형태는 바뀌었어도 두레와 같은 전통은 산업사회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1975년 이후 국내 산업계에 광범위하게 확산·보급된 '품질분임조' 활동은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두레정신과 일맥상통한다. 다만 산업현장에서 QC 7가지 도구 등 과학적 기법을 적용, 문제를 더욱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자주적·능동적 조직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경제와 산업이 고도화되고 소비자의 욕구도 다양화해지면서 분임조 활동의 방법, 적용분야 또한 변화를 거듭해 왔다. 과거에는 제품 성능 '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현재는 모든 프로세스를 재점검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데 역량이 집중되고 있다. 제품설계 단계부터 불량을 차단하는 예방 품질이 중요시되고, 사전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또한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업, 공공기관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 영역이 넓혀지고 있고, 해외 공장도 서둘러 분임조 활동을 도입하고 있다.

품질분임조 활동은 우리 나라뿐 아니라 일본, 중국을 비롯해 세계 50여 국가에 보급되어 있다. 이미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국 GE의 '워크아웃'이나 일본 도요타의 '자주연구회'도 명칭은 다르지만 품질분임조와 같은 목적을 갖고 창의적 품질혁신 활동으로 성공한 경우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분임조'라는 가장 기본적인 소집단 활동을 통해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였다.

많은 품질 전문가들은 제조업이나 서비스 업종을 불문하고 모든 문제의 시작과 끝은 현장에 있고, 해결의 열쇠도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쥐고 있다고 한다. 현장은 개선의 寶庫(보고)다. 현장 근로자들이 모여 있는 품질분임조는 지혜의 원천이며, 분임조원의 창의적 아이디어의 기반이다. 단지 거창한 이론만 논의하는 조직이 아니라 오랜 경험과 생동하는 지식을 공유하며, 끊임없이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창조적 혁신그룹인 것이다.

최근 지식 정보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세계시장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국가 간의 상품 및 서비스 경쟁이 점점 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경쟁 여건에서 우리 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 고급화와 차별화로 전 세계의 소비자를 만족시키고 감동을 주는 길밖에 없다. 그 중심에 품질 분임조가 있다.

현재 우리 산업현장에는 7천500여 사, 50만 명의 분임조원이 품질분임조 활동을 하고 있다. 5만여 명의 현장개선 리더와 1천200여 명의 품질명장이 산업현장의 중추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 기업의 눈부신 양적 성장과 함께 개별 특성에 맞는 모델 개발, 종업원의 자발적 참여 유도, 장기적 추진목표가 뒷받침된다면 분임조 활동은 보다 선진화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제 품질분임조 활동은 품질 개선뿐 아니라 노사 화합의 전위조직으로 승화되고, 현장 중심적인 소통의 통로로 발전함으로써 진정한 경제회복의 원천이 될 것이다. 품질분임조의 미래에 대한 지원과 정책적 관심이 주어져야 할 분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9월 1일부터 5일 동안 천년 고도 경주에서 열리고 있는 '2008 전국 품질분임조 경진대회'를 계기로 세계 속의 한국 품질이 비상할 때가 되었다.

최갑홍 한국표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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