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진정성을 보여주세요

'국민과의 대화'는 소통의 장/막힌 국정'갈등 해결 기회로

창과 방패의 싸움이라도 되려나?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를 갖는다니 하는 말이다.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작금의 갈등을 청산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당초 대통령 취임 100일에 맞춰 계획됐던 국민과의 대화였다. 그러나 촛불집회로 축하 쇼는 말도 꺼내지 못하다가 올림픽을 계기로 국정 주도권을 움켜잡으려는 시도로 읽힌다.

기대만큼 우려 또한 없지 않다. 100분은 총론과 我田引水(아전인수)식 변명으로 떨어진 대통령 인기를 끌어올리려 시도한다면 부족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국정 전 분야에서 이론과 현장 실무까지 꿰뚫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청와대가 패널에 설득을 당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통계를 동원하고 석학들이 논리를 갖다 붙인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설명이 어려울수록 무언가 숨기는 음모가 있을 것이라 국민들은 의심하게 될 것이다.

전국시대, 서쪽의 강성한 진나라를 두고 초 제 연 한 위 조 6개 나라는 서로 뭉쳐 안위를 도모한다. 소진이 合縱(합종)을 성사시킨 것이다. 그의 현란한 遊說(유세)에 6국이 설복당한 것이다.

귀곡 선생 아래에서 소진과 동문수학한 장의는 같은 시대적 위기를 전혀 다른 구도로 해결한다. 장의는 진나라 왕과 대신들을 설득해 합종을 깨고 6개 나라들이 각각 진과 연대를 하도록 만든다. 소위 連橫(연횡)이다.

같은 시대,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논리로 어떤 정책을 어떻게 추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쪽이든 장점과 단점이 있으나 마땅히 계량화할 수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국정이라면 그만큼 추진하는 쪽의 국가관과 국민을 위하는 진정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구태여 100분 토론이 대통령과 국민의 승부로 갈 이유가 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세상이 다 알고 있지만 정작 '당신'에게 사실을 제대로 전해 주는 것은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동화다. 불교도들이 대통령의 '종교 편향'에 항의하며 결기를 돋우고 있다. 우리나라에 편파적인 종교 문제로 이렇게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일은 전에 없었다.

대통령이 개신교회 장로 출신이 아니었다면 과연 국토해양부의 대중교통정보온라인시스템에서 사찰 정보가 빠졌을까? 불교계의 반발에도 교육과학기술부의 교육지리정보시스템에서 유명 사찰이 또 빠졌을까.

불교계의 항의는 대통령의 후보 시절부터 지켜보아 왔음을 보여준다. 이미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기 때문이다. 대통령으로서는 아주 사소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소속된 종교 지도자들을 유별나게 가까이하니 고위 공직자들의 공사 구분 않는 특정 종교 행위들이 잇달고 있다고 불교도들은 믿고 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취임 200일을 계기로 슬럼프에서 탈출해서 대통령 후보 시절의 구상대로 국정을 운영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도 있다. 거꾸로 국민들은 상대 후보와 최대 표차로 당선시켜준 그 대통령이 배신하지 않고 진정성을 보여주기를 희망한다. 이번 국민과의 대화가 그 기회이다. 변명보다 진솔하게 국민에게 다가와 속내를 털어놓고 사과할 일이 있다면 사과해야 한다. 국민과의 대화를 국민과의 전투가 아닌 국민과의 소통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중국 당나라 때 당대의 시인이자 고을 태수인 白樂天(백락천)이 鳥?(조과) 선사를 찾아와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합니까?" 물었다. 선사가 "악을 짓지 말고 선을 행하라"고 말해주자 백락천은 "그런 것쯤이야 세 살 먹은 아이도 압니다"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선사는 "세 살 먹은 아이도 쉽게 알 수 있으나 백 살 먹은 노인도 행하기는 어렵다"고 일갈했다.

대통령이 국민 앞에 정직하게 다가선다면, 그래서 진정성을 보인다면 국민을 감동시키기에는 100분이면 충분하다. 청와대가 '말하는 자리보다 듣는 자리로 한다'는 원칙까지 세우고 리허설까지 한다니 국민을 감동시킬 대통령의 진정성을 기대한다.

李敬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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