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인력 있는 선전기법에 '비방적 명명(name-calling)'이란 것이 있다. 상대방이나 그들의 주장을 매도하기 위해 나쁜 이름을 붙이는 수법이다. 쉽게 말해 '낙인찍기'다. 이를테면 미국의 보수진영이 낙태시술을 해주는 병원을 '유아살해공장'이라고 이름 붙이는 식이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쿠바의 카스트로를 '국제적 무뢰한',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제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란, 북한 등을 '악의 축',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을 '차떼기당'이라고 한 것 등도 같은 범주에 들어간다.
반대로 자기를 높이고 자기 주장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화려한 추상어(glittering generality)'도 있다. 만인으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낼 수 있는 단어로 치장하는 수법이다. 미국에서 노조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일할 권리(right to work) 법'이라고 명명하거나 자본가들이 빚이라는 단어 대신 '신용(credit)'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모두 대상이나 특정 사안을 심리적 각인효과가 높은 단어 한두 개에 가두는 방식이다. 이 같은 단어는 언어학에서 얘기하는 '프레임(틀)', 즉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일종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야 간 낙인찍기 전쟁이 가열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정부의 부동산'감세 정책에 대해 '부동산 폭탄' '1% 특권층을 위한 감세' 등으로 공격하고 있다. 공모에서 채택된 對與(대여) 공격 용어에 대해서는 매달 100만 원의 포상금도 지급한다고 한다. 한나라당도 지지 않고 있다. 민주당이 수뢰 혐의를 받고 있는 김재윤 의원에 대한 검찰수사를 '공안정국 조성'이라고 비난하자 '민주당은 꼬투리 잡기 전문당'으로, 기업규제완화대책에 대한 '친재벌정책'이란 비판에는 '친시장정책'으로 맞받아치고 있다.
낙인찍기는 대상을 불순한 의도가 숨겨진 프레임에 가둔다는 점에서 왜곡이다. 정치에서 낙인찍기가 횡행하면 국민의 판단도 왜곡된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왜곡을 고착시킨다는 사실이다.
"바깥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실 모두를 대중에게 보여준다면 합리적인 사람은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중략) 인간의 두뇌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한번 자리 잡은 프레임은 웬만해선 내쫓기가 힘들다." 레이코프의 결론이다.
정경훈 정치부장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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