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8시 경주 서라벌 문화회관. 공연을 관람하러 온 승지(가명·15·여)는 안절부절못했다. 객석 의자가 어색한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난생 처음 보는 오케스트라 공연, 무대 불빛을 향하는 아이의 눈에선 긴장감이 서렸다. 유난히 큰 눈망울을 가진 아이는 60명에 달하는 대구시립교향악단의 규모에 놀란 표정이었다. 조명 빛을 받은 호른과 트럼펫이 반짝거렸다. 연주를 알리는 방송과 함께 감미롭고 웅장한 교향곡들이 차례로 연주됐다.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가 이어질 때 아이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슬픈 선율에 가슴이 찡해진다고 했다. 사실은 엄마 아빠가 보고싶다고 했다. 가족 품을 떠난 이후 세상과 단절된 아이. 보육 시설에서 짬짬이 배운 플루트를 더 열심히 배우고 싶지만 희망일 뿐. 그래서 아이는 여자상업고등학교로 진로를 택했다고 했다. 학교에 관현악단이 있어 플루트를 맘껏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추석이면 으레 특별 용돈을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젠 용돈보다 공연을 더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언젠가는 저 무대에 서고 싶다고, 엄마 아빠가 무대에 선 승지를 잊지 않고 찾아와 주길 바란다고….
대구시립교향악단이 '찾아가는 음악회'를 통해 경주 지역 보육원생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석 선물을 안겨줬다.
'시민음악회'란 주제로 열린 이날 공연은 100여명의 보육원생들에게 가슴 속 생채기를 달래주는 진한 감동의 무대였다. 시린 마음을 속으로만 달래야 했던 아이들, 잔잔한 바이올린 선율과 시원스레 울려 퍼진 튜바의 웅장함은 낯설지만 포근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비록 1시간 30분 남짓의 공연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삶의 쉼표를 가르쳐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삶은 그렇게 녹록지 않고 기댈 가족은 여전히 멀리 있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클래식 음악 품 속에서 위안을 얻었다.
이날 공연은 경주의 사회봉사단체인 화랑회 특우회가 추석을 맞아 시민들에게 문화향유권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무대였다. 김기웅 화랑회 사무1차장은 "경주시민들에게 대구시향의 고품격 클래식 공연을 선사하기 위해 음악회를 마련했다"며 "특히 시설아동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시립교향악단은 추석을 하루 앞둔 오는 12일 대구의 성보재활원을 방문, 찾아가는 음악회를 연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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