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저 유치한게 왜 뜨지?…대중문화에 번진 'B급 감성'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최근 개봉한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촌티가 팍팍 난다. 원작 '다찌마와 LEE'가 그러했듯이 '총천연색' 화면에 '일백후로 후시녹음'(100% 後時錄音) 소리가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연기와 함께 펼쳐진다. 대사까지 평범함을 벗어나고 '크허헉'이나 '뜨시' 같은 의성어까지 마음 놓고 섞어 주신다. 그 옛날 담벼락에 붙은 영화 포스터에서나 볼 수 있었던 'B급 감성'이 가득 담긴 영화에 관객들은 열광했다. 왠지 '촌스러운, 유치한, 키치(kitsch)적인, 어설픈, 비주류적인' B급 문화는 2000년을 전후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주류와 같이 됐다. 주류 속에 자리를 튼 B급 문화의 세계를 살펴보자.

◆대중문화 곳곳에 번진 B급 감성

찾아보면 B급 문화는 대중문화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안방극장에서는 MBC TV의 '무릎팍도사'의 흥행비결이 'B급 코드'로 해석되기도 한다. 점집을 연상시키는 세트는 온통 황금색과 붉은색으로 가득하다. 만화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도형 위로 적힌 '천기누설 무릎팍도사'는 웃음부터 자아내게 한다. '무릎팍도사' 제작진은 "세트 벽면을 반짝반짝하는 황금색과 붉은색으로 장식했다. 되도록 유치하면서 촌스럽게 보이는 키치적 이미지로 웃음을 유발하고자 했다"고 세트 제작 의도를 밝혔다. '무릎팍도사' 강호동이나 진행 도우미 유세윤, 올라이즈밴드(우승민)의 차림새에도 B급 이미지가 확 묻어난다.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SBS TV의 '패밀리가 떴다' 출연진의 경우도 근엄한 척하는 연예인이기보다는 소박한 우리 이웃처럼 행동하며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케이블TV에서는 이런 B급 감성이 일찌감치 단골 소재로 표현됐다.

DJ DOC의 정재용이 진행한 '재용이의 순결한 19'는 정재용의 만화영화 속 여성 캐릭터 차림과 만화 같은 배경 처리가 화제를 모았다. 이는 한국영화 '다세포소녀'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만화영화 '아치와 시팍'은 아예 욕설과 성, 배설이라는 코드를 마음껏 널어놓았다.

일간신문에도 B급 감성이 등장했다. 한겨레신문의 생활문화매거진섹션인 'Esc'(탈출하다는 영어 단어 'Escape'의 약어)는 B급문화의 오락정신에 충실하려고 한다. 지난해 5월 첫시작부터 '품위있고 우아한 매거진을 지향하지 않습니다'라고 천명했다. 연재가 끝난 '좀비의 시간'이나 현재 연재되고 있는 '사용불가설명서'는 충격적(?)인 그림과 내용으로 눈길을 끌었다.

광고 중에도 B급 감성은 많이 눈에 띈다. LG텔레콤은 '푸콘 가족'이라는 활짝 웃고 있는 마네킹 가족을 등장시켰다. '양아치 취향'으로 천대받던 힙합 패션이나 '운동복 패션'도 이젠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원래 B급 문화였던 B보이도 이젠 주류문화에 발을 담그고 있고, 만화 또한 서점의 한쪽을 차지했다. 각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싣고 있는 무료만화는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일부 만화 작품들은 배설이나 성욕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한다. 이처럼 B급문화는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면서 주류문화가 B급 코드를 차용하는 등 영향력도 높이고 있다.

◆엄숙주의 비웃는 엽기로 가득

우리나라 B급 문화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웹사이트 '딴지일보'(www.ddanzi.com)다. 딴지일보의 창간사는 '한국농담을 능가하며 B급 오락영화 수준을 지향한다'며 '본지의 유일한 경쟁지는 선데이서울'이다. B급 자의식을 지향하고 있음을 스스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딴지일보 인터넷 기사를 엮은 단행본 '썬데이 딴지' 뒤편에 붙은 '딴지일보 졸라 스페셜'의 머리말을 보면 이들이 말하는 B급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우리네 생각의 틀이, 주류가 아니라는 이유로 뒤틀린 채 감금되어 질식당하고 있는 이 비상식의 세상에 발랄하게 일탈하며 작은 똥침 한방을 놓는 것.'

이런 방식으로 B급 문화는 근엄한 A급, 즉 주류사회를 조롱해 왔다. 류승완 감독이 자신의 영화 '다찌마와 리'에 대해 "엄숙주의에 침 뱉은 영화"라면서 "관객이 영화를 보고 낄낄거렸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 문화평론가는 B급 문화의 인기에 대해 "주류문화에 대한 식상함에서 나오는 반발감과 세상을 야유하고 조롱하는 듯한 B급 문화의 솔직함과 풍자성에 사람들이 매혹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리 사회의 문화적 동맥 경화증'에 지친 사람들의 욕구불만이 인터넷이라는 무한대로 열린 표현매체를 통해 마음껏 배출된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B급 문화 팬들이 결집하고, 이를 스포츠신문을 비롯한 언론매체들이 앞다퉈 다루기 시작하면서 열풍이 일었다. 최근에는 '디카'(디지털 카메라) 확산으로 '뽀샵질'(포토샵 프로그램으로 사진을 가공하는 것)을 하고 동영상을 제작하는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 문화의 확산으로 B급 문화는 더욱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딴지그룹 총수 김어준씨는 예전에 "A급와 B급의 차이는 취향의 차이일 뿐"이라고 했다. A급이 B급을 차용하고 B급이 주류가 되기도 하는 요즘 현실을 꿰뚫어 본 말이다. 김씨는 딴지일보가 성공한 것에 대해 "우리 사회의 엄숙주의에 대한 서민적 발랄함의 승리"라고도 했다. B급 문화의 부활이 팍팍한 현실에 신선한 웃음을 선사해 주는 활력소가 될 수도 있겠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B급 문화란?

B급 문화는 'B급 영화'(B Picture)라는 용어에서 의미가 확장됐다. B급 영화란 1930년대 미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가 스튜디오 시스템 아래서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만든 작품과 동시상영으로 끼워 팔기 위해 만든 싸구려 영화를 뜻한다. 낮은 예산으로 지명도 낮은 배우들을 기용해 제작하기에 A급에 못 미친다는 의미였다. 이후 저예산 영화나 질적으로 떨어지는 영화를 통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A급에 대한 경쟁의식이 없기에 독특한 세계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이런 점에서 주류문화에 대항하는 개념인 '비주류문화', '저항문화'와는 성격이 다르다.

B급 문화의 특징으로는 ▷지극히 솔직함 ▷소수 지향성 ▷유치하고 어설픈 느낌 등을 들 수 있다. 폭력이나 섹스 등 억압된 본능을 드러내 놓고 얘기하는 것도 B급 문화의 솔직함에서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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