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내를 지나던 길에 어느 부동산 중개업소가 내건 광고 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돈은 가볍고 땅은 무겁다.'
땅이 무거운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돈이 가벼운 것은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입니다. 10년래 최고치라는 소비자 물가 급등 때문에 돈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가벼워집니다. 물가는 오르는데 월급은 동결되거나 깎이니, 크로스 카운터 제대로 맞은 서민들의 고통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닙니다.
경제가 어려우면 모두가 고통받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남의 불행을 먹이사슬 삼아 부를 늘린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실제로 IMF 외환 위기 때 오히려 부자 된 사람 적지 않습니다. 1억원을 금융회사에 맡기면 1년에 2천만~3천만원 정도의 이자가 붙던 시절이었습니다. 환란으로 도산해 경매에 넘어간 알짜배기 부동산을 헐값에 취득한 부자도 많았고, 달러당 2천원을 넘나드는 고환율 덕에 표정 관리하던 수출기업주도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우량주들을 휴지 줍듯 바구니에 담아간 외국인 투자자들도 IMF를 통해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기고 있지요.
요즘 환율 동향이 심상치 않습니다. 환율이 급등하면 수입 물가도 오르기 때문에 걱정스럽습니다. 요즘 서울 외환 시장에서는 '도시락 폭탄'이라는 은어가 사용되고 있다는군요. 환율 상승을 저지하기 위해 외환 당국이 달러를 집중적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을 빗댄 말이지요. 외환 딜러들이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에 기습적으로 수억~수십억달러를 퍼붓는다고 해서 이런 말이 붙었다고 합니다.
환율을 진정시키고자 하는 정부의 고심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딱하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정책은 결과로 평가해야 하는데 피 같은 2백여억달러의 외환 보유고를 쓰고도 환율을 잡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하기야 자기 패를 다 보여주고 시장에 개입을 했으니 환투기 세력들의 먹잇감이 되기에 딱 그만입니다.
작금의 금융시장 9월 위기설은 괜히 나도는 것이 아닙니다. 시장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때 인기를 끌었던 '만수야 남대문 열렸네'라는 TV CF가 네티즌들 사이에 패러디되어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잇따른 환율 역주행 정책과 외환시장 개입 패착에 대한 국민들의 근심 걱정이 그런 식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땅은 무겁다'는 말은 부동산 불패신화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확고한 믿음이 스며든 문구일 겁니다. 정부는 건설경기를 살려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밝혀 논란의 불을 지폈습니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일자리라는 것이 건축현장의 일용 막노동일이었을까요.
수요·공급 기반 없는 자산 가격 상승은 결국 거품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거품은 반드시 꺼지고 혹독한 대가를 요구합니다. 그 뼈저린 교훈을 일본의 거품 붕괴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통해 목격하고 있지요. 우리는 왜 이를 타산지석 삼으려 하지 않는 것일까요.
이번주 주말판에는 '인플레 바가지?'와 '감세 정책 한국 경제 살리나?' 기사들을 다뤘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좋은 소식 보기 어려운 요즘에 어두운 기사 목록을 더한 것 같습니다. 편안한 주말 되십시오.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