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빛. 말 그대로 망망대해. 보이는 것이라고는 푸른빛뿐이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맞닿은 경계조차 모호하다. 하늘빛인지, 바다빛인지 그냥 거대한 블루가 펼쳐져 있다.
'그랑블루'.
'거대한 푸른빛의 바다'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이 영화의 포스터는 한때 카페며 술집 벽을 장식했다. 속까지 시원한 푸른 바다 위를 뛰어오르는 돌고래와 한 남자. 별빛과 달빛을 받아 신비감을 더해주는 포스터였다.
다소 고답적인 프랑스영화의 이미지를 탈피시켜준 뤽 베송 감독의 초기작품이다. '니키타'를 비롯해 초기 작품에서 보여준 푸른빛이 총체적으로 조합된 영화다. 특히 미국의 촬영기술을 전수받은 웅장한 수중 촬영이 뤽 베송 특유의 감각과 어우러졌다.
장 마르 바가 연기한 자크는 실존 인물(Jacques Mayol·1927~2001)로, 17세 때부터 해저에 도전했고, 1983년 56세의 나이로 수심 105m까지 잠수한 기록을 세운 무산소 잠수 대회 신기록 보유자이다.
바다는 남성들의 영원한 로망이다.
'그랑블루'의 두 주인공도 바다에서 숨을 쉬며 살아온 사나이들이다. 공룡의 발자국이 뚜벅 뚜벅 찍혀 있을지 모를 심연에 대한 갈망이 삶의 존재 이유가 된 남자들이다. 목을 조르는 수압을 견디며, 절대고독의 공간으로 빠져들어, 거기서 오히려 인간한계를 극복하는 희열을 느끼려는 것이다.
바다는 이미 죽음을 상정하고 있다. 심연의 푸른 이미지는 죽음과 흡사하다. 자크에게도 바다는 죽음의 공간이다. 아버지를 집어삼킨 악몽이 떠나지 않는 원한의 바다다.
그러나 그는 바다를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바다에 매달린다. 마치 원수를 갚듯이 열대의 바다뿐 아니라 극지의 바다 속까지 탐험한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들의 이름으로 바다를 정복하려고 한다.
시인 문인수는 '바다, 그 대강 줄거리'라는 시에서 가족을 얘기한다.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는 한 가족. 가난하지만, 부자는 바다를 떠나지 않는다. 인어이야기를 하는 아버지를 통해 바다를 동경해온 외로운 소년, 바다 속으로 들어간 아버지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돌고래하고만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그는 동화처럼 아름다운 눈으로 사랑을 시작한다.
숨을 쉰다는 것, 숨이 막힌다는 것. 그것은 사랑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또 아버지가 된다. 그리고 배 속의 아이가 모태에서 헤엄을 칠 때쯤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또 심연 깊이 들어가 버린다.
사랑은 선택이고, 죽음은 운명이다. '대강'이라는 제목의 무심한 표현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화가 장숙경은 영화의 블루톤을 캔버스 전편에 걸쳐 뿌려놓았다.
자크가 들어간 많은 바다를 바둑돌처럼 펼쳤고, 반짝이는 햇살, 밤바다를 적시는 별빛마저 푸른색으로 그렸다.
엔조의 잠수복 색인 레드와 그린을 더해 그들의 우정을 그려 넣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둘의 우정은 같은 운명의 태생적인 끈으로 연결돼 있다. 그래서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돌고래와 춤추는 자크를 중간에 배치했다.
운명론과 자유의지는 인간이 줄 타고 살아가는 양대 산맥이다.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운명의 끈을 자르려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자유는 늘 한계를 요구하고, 그 한계의 극점은 죽음이다.
죽음으로도 놓치지 않으려는 자유의지와 그 또한 숙명이라는 것, '그랑블루'가 보여주는 눈부신 푸른빛 이미지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 그랑블루(Le Grand Bleu, 1988)
감독:뤽 베송
출연:장 마르 바, 장 르노, 로잔나 아퀘트
러닝타임:110분
줄거리:그리스의 작은 어촌 출신인 자크(장 마르 바)는 아버지가 잠수 사고로 죽은 뒤, 바다와 돌고래를 가족으로 여기며 외롭게 성장한다. 그는 친구이자 적수인 엔조(장 르노)와 잠수실력을 겨루며 우정을 다져간다. 성인이 된 자크는 엔조와 재회하고 잠수챔피언인 그의 초청으로 대회에 참가하면서 여기자 조안나(로잔나 아퀘트)와 사랑에 빠진다. 대회에서 자크가 승리하자, 엔조는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끝없이 잠수를 시도해 결국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숨진다. 죄책감에 빠진 자크는 어느 날 밤, 심연 속으로 잠수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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