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종호의 친절한 오페라] 오페라의 숨은 공로자 프롬프터

오페라 공연에 가보자. 무대를 유심히 보면 무대 앞쪽 가운데에 위로 약간 올라와서 무대를 가리고 있는 부분이 있다. 보통 네모진 것으로 작은 경우는 작은 책상 하나가 올려져 있는 크기이며, 좀 클 때는 긴 테이블 하나 정도의 크기이다. 그것은 주로 어두운 색으로 되어 있어서, 객석에서는 왜 무대 가운데에 그런 것이 있는지 의아해 하기도 한다.

이것은 '프롬프터 박스'로서, 그 안에는 '프롬프터(prompter)'라고 부르는 사람이 들어 있다. 그리고 박스는 객석에서 볼 때는 막혀 있는 상자 같지만, 가수들을 향하여 뒤쪽으로는 열려 있어서 프롬프터와 출연자들은 서로 볼 수가 있다.

프롬프터는 오페라 전체를 그린 악보, 즉 총보(總譜)나 아니면 성악 파트가 적힌 악보를 가지고 그 박스 안에 들어간다. 원래 프롬프터가 하는 일은 가사를 읽어주는 일이었다. 사실 오페라가 길다 보니 출연자들이 중간에 가사를 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프롬프터가 출연자들 귀에 들릴 정도의 음성으로 가사를 읽어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 황당해 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사실인 것을 어떡하랴. 프롬프터의 존재는 오페라를 우습게 보거나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공박을 받는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로 오페라를 폄하할 것만은 아닌 것이 프롬프터는 원래 연극에서 나온 것이다. 즉 연극 공연에서도 과거에는 대사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며, 그것을 오페라에서 수입한 것이다.

하지만 프롬프터가 가사를 모두 읽어주는 것만은 아니다. 주로 각 소절의 첫 부분만을 읽어준다. 그러면 성악가는 이후의 가사가 생각나서 뒷부분을 수월하게 노래하는 것이다. 사실 오페라에는 비슷비슷한 대목이나 멜로디가 적지 않다. 여러 노래들이 흡사한 경우가 많은데, 그 때마다 다른 가사들을 다 외우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고 다른 작품의 가사와 헷갈리는 수도 적지 않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안전장치로서 프롬프터가 있는 것이다.

요즘은 프롬프터가 단순히 가사를 읽어주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출연자의 연기가 연출가가 지시했던 것과 다르면 지적해주고, 그들의 위치나 자세도 교정해주며, 다음 동작의 시작을 알려준다. 그는 마치 축구의 주장처럼 그라운드 안에서 야전(野戰) 사령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연출이나 연기가 오페라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대에 프롬프터가 있는 자체를 싫어하는 연출가가 많아졌다. 그들은 가수들이 일류 연극배우들처럼 완벽한 연기를 몸에 익혀서 나가기를 원하지, 프롬프터에게 의존하면서 어색한 연기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세계적으로 프롬프터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루치아노 파바로티같이 가사 외우기에 게으른 가수들이나 너무 공연이 많아서 헷갈릴 우려가 높은 가수들은 프롬프터를 강력히 원하기도 한다. 또한 무대에 가까운 앞자리에 앉는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프롬프터가 가사를 읽는 소리가 다 들리는 경우도 있어서 감상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일부 DVD에서조차 프롬프터 목소리가 들리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 또한 베로나의 아레나 야외극장 같은 대형 극장에서는 큰 박스 속에 프롬프터가 2, 3인이 들어가기도 한다. 이렇듯 오페라에서 프롬프터란 중요하면서도 없으면 더 좋을 묘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프롬프터가 되기를 목표로 하고 공부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지휘자나 연출가 지망생들이다. 하지만 오페라하우스에서 프롬프터 박스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다.

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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