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규(60) 희망연구소장. 그녀만큼 '입지전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가난한 엿장수의 딸로 태어나 가발공장 직공, 골프장 식당 종업원을 전전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미 육군 소령이 됐다. 마흔둘에 하버드 대학원에 입학해 16년 만에 박사학위를 따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의 저자 잭 캔필드는 그녀에게 "당신의 삶 속에는 책이 몇 권이 있고, 영화가 여러 편이 숨어있다"고 했다. 삶 자체가 드라마라는 말이다. 그녀는 "나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명을 갖고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녀는 가난과 매질, 차별 등으로 인한 유년의 트라우마를 '희망'으로 멋지게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커피전문점에서 그녀를 만났다. 수수한 옷차림과 여유있는 웃음. 수없이 받아봤을 반복된 질문에도 그녀는 싫은 기색이 없었다.
◆상상은 나의 힘
-부모님에 대해 얘기를 해보죠. 어린 시절 가난과 차별로 부모님 원망을 많이 했다면서요?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었죠. 어머니는 무뚝뚝하셨고 말보다 손이 먼저 올라갔어요. 4남 2녀였는데 딸, 아들 차별도 극심했고요. (경남 동래에서 제천으로 이사온 후) 술장사를 하셨는데 밖에서 화나는 일이 있으면 꼬투리를 잡아서 주정을 하고 때리면서 풀었어요. 하지만 내가 성공하는 데는 어머니 영향이 더 컸어요. 어머니가 나를 강인하게 키우지 않았으면 성공하려는 결심도 없었을 거예요."
-공부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입니까?
"6학년부터예요. 그 때부터 집안일을 제가 다 맡아서 했는데 너무 하기 싫은 거예요. 하기 싫어 죽겠는데 자꾸 하라고 하니까 분노와 오기가 생겼어요. '두고봐라. 난 큰 인물이 될거다.' 뭐가 성공인지 선생님께 여쭤보니 '공부 잘해서 박사가 되면 성공한 거다' 그러더군요. 그 때부터 박사가 되기 위해 공부에 매달린 거죠."
-그래도 갑자기 공부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상상을 통해서 스스로 채찍과 당근을 줬어요. 공부가 하기 싫을 때 내가 무시당하고 짓밟히고 초라한 모습을 상상했어요. 아주 비참하고 가여울 정도로. 분노와 반항, 오기가 올라오고. 그러면 다시 공부하게 되고. 아니면 암행어사가 되는 꿈을 꿨어요. 탐관오리나 나쁜 사람들이 불쌍한 사람들을 짓밟을 때 내가 딱 나타나서 다 무찌르고. 얼마나 통쾌해요. 그런 극단적인 상상을 오가며 힘을 냈죠. 덕분에 6학년 졸업할 때는 전교 2등으로 성적이 올랐어요. 선생님들이 칭찬을 하니까 으쓱해진 부모님이 중학교, 고등학교도 보내주더군요."
-어릴 적 그 상상은 현실이 됐나요?
"몇백 배가 이뤄졌죠. 제천에서 2010년 한방바이오엑스포를 하는데 제가 홍보대사 1호로 뽑혔어요. 임명장을 받고, 강연을 하기 위해 시장님의 안내를 받아가며 강단에 섰는데. 정말 소름이 쫙 끼치는 거예요. 진짜 환희지. 초라했던 소녀가 세계 최고 대학의 박사가 되어서 돌아왔잖아요. 시간은 좀 오래 걸렸지만 상상이 현실이 된 걸 느끼면서 정말 신났어요. 내 상상은 피신처였지만 결국 비전이었어요. 긍정의 힘을 삶으로 증명한 거죠. 세상을 위해 큰 일을 하겠다는 꿈이 있고, 최선을 다하니까 도움은 저절로 오는 것 같아요."
-서울 풍문여고로 가서도 성적이 좋았는데 왜 대학 진학을 포기했습니까?
"고교에서는 전교 2등을 했어요. 그런데 폐병으로 죽다 살아난 오빠가 회복하고 대학원서를 냈는데 하필 저랑 겹친 거예요. 결국 포기했는데 오빠가 대학에 떨어져서 더 억울했죠. 그리고는 사촌언니와 가발 공장에서 일했어요. 하기 싫고 솜씨도 없어서 밥도 많이 굶고 매일 울었어요. 배 안 곯을려고 관악골프장 식당 종업원으로 일했지요."
◆미국은 내게 기회를 주었다
-미국에는 어떻게 가게 됐죠?
"미국 선교사에게 매주 1번씩 영어회화를 배우러 다니면서 미국에 가면 기회가 많다고 들었어요. 미국에 대한 동경도 컸고. 우연히 미국에서 가정부를 구한다는 광고를 봤어요. 1971년에 갔는데 운좋게 가정부 대신, 한인 식당에서 일하게 됐고 돈도 꽤 벌었어요. 천운이었죠. 1년 만에 꿈에 그리던 대학에도 다니기 시작했고요. 첫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남편의 폭력과 외도로 이혼을 두번 하셨다는데 여자로서는 참기 힘든 고통을 겪으셨네요.
"오죽하면 못 견디고 입대를 했겠어요. (그녀의 첫 남편은 합기도 사범이었고, 두번째 남편은 군에서 만난 10세 연하의 미국인이었다. 첫 남편은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둘렀고, 두번째 남편은 그녀의 입양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두 사람이 너무 달랐어요. 첫 남편은 제게 늘 '너는 쓸모없는 존재'라며 극도로 억눌렀고, 두번째 남편은 굉장히 자상했어요. 양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지만 두 사람을 용서하고 잘 해결하려고 했는데 군에서 허용을 안 하더라고요. 또 그런 일이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아 이혼을 했죠."
-그런 경험을 하면 아무래도 결혼 생활에 대해 부정적이 되진 않나요?
"아니요. 예전에 한 결혼 관련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더라고요. 그래서 난 두번 실패한 사람인데 왜 그러냐고 했더니 '실패 안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묻더군요. 하하. 그래서 저는 너무 사랑만 믿지 말라고 했어요.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잖아요. 그러니 주변 사람들 말에 조금은 귀 기울일 것. 사랑에 빠졌다고 당장 결혼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서 판단해라 그랬어요."
-28세에 결혼의 도피처로 군대에 갔는데 힘들진 않았습니까?
"힘들었죠. 처음엔 윗몸일으키기 하나도 제대로 못했어요. 얼차려도 많이 받고, 왕따도 당했어요. 그런데 군에서 군복 빨고 다림질하고, 청소하고 정리·정돈하는 것도 중요한데 그건 제가 전문이잖아요. 그래서 동료들을 도와주면서 친해졌죠. 저는 체력 훈련에 도움을 받았고. 힘들 때는 성공해서 남을 돕겠다는 사명감으로 스스로를 다독였어요. 결국은 200명 중에 1등으로 졸업을 했어요."
◆하버드를 가다
-42세에 하버드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하셨는데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신 이유가 뭡니까?
"대위 때 하버드를 갔는데요, 당시 군에서 지원하는 동북아 지역전문가 교육이 있었어요. 일본에서 근무를 하게 됐는데 일본 남자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설득과 협상을 잘 하려면 하버드 학위가 필요하겠더라고요. 사실 제가 군에서 성공하는 데 박사 학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어요. 오죽하면 당시 한국학과장이 '넌 박사 할 이유가 없다. 단지 네 명예일 뿐인데 뭐하려고 사서 고생을 하냐' 그러면서 저를 탈락시켰어요. 그래서 제가 다시 만나서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과정을 설명하고 '나는 세상에 꿈과 희망을 심어줄 사명이 있다'고 설득했어요. 결국 이듬해 32명 중에 2명을 뽑는데 합격을 했죠. 그런데 사실 박사 과정을 준비하면서 왜 하려고 했는지 회의도 많이 들었어요. 하버드에 대한 매력도 떨어졌고."
-그런데 왜 포기하지 않았죠?
"딸이 하버드에 떨어지면서 자극을 받았어요. 딸애가 고교 졸업할 때 250만명 중에 141명만 주는 대통령상을 받았어요. 또 학생회장, 신문사 편집장, 홍일점 야구선수까지 굉장했거든요. 하버드 입학은 따놓은 당상이었는데 얘가 시건방지게 외국 거주 학생을 위한 인터뷰를 안 받은 거예요. 당연히 떨어졌죠. 그 일이 사실 큰 계기가 됐어요. 딸애는 조지타운대에 진학하면서 겸손을 배웠고, 3학년 때 하버드로 전학을 왔어요. 저는 1996년 군에서 제대하고 본격적으로 박사 공부에 매달렸고요. 또 하버드 역사상 처음으로 엄마와 딸이 함께 공부하게 됐고, 유명해지면서 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어요."
-따님이 대단한 수재인데 어떻게 교육하셨나요?
"아이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 사실 글로벌 시대에는 초등학교 성적이 어떠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몇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문화와 역사에 대해 이해하느냐가 힘을 발휘하죠. 또 아이를 항상 주시하면서 마치 아이가 자신의 의지로 선택을 하는 것처럼 연출을 했어요." (그녀는 저서 '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낳는다'에서 딸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기 위해 딸이 평소 좋아하던 일본만화를 미끼로 일본어를 배우고 싶다는 의욕과 목표를 끌어냈다고 했다.)
◆세상에 희망과 꿈을 전하다
-강연도 하시고 책도 내시는데, 감추고 싶은 비밀까지 다 털어놓는 이유가 있습니까?
"매 맞고, 이혼한 얘기를 다 털어놓는다고 나를 우습게 보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신경쓸 가치가 없는 사람이에요. 내가 남편을 죽이고 싶었던 과거를 얘기하는 건 남자들이 겁을 좀 내라는 거지요. 여자들이 힘이 약해 매를 맞지만 멈춰 있지 않거든요. 들은 얘기인데 어떤 부인은 남편이 일찍 죽으라고 음식을 일부러 짜게 만든대요. 또 음식에 조금씩 독약을 섞어서 서서히 몸이 망가지게 하는 부인도 있고요. 그러니 아내가 언제 복수하고 있는지 몰라요. 또 여자들에게는 복수를 하기 위해 자신을 파멸로 끌어가는 것은 오히려 바보다. 꼭 죽이지 않아도 다른 탈출구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거죠."
-미국 국무장관이 꿈이라고 들었습니다.
"가능하니까. 또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줄 때 그냥 박사보다는 밑바닥에서 출발해도 미국 국무장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면 더 힘이 실리잖아요. 제가 외교 문제 해결에 소질이 있어요. 그래서 국가 간 외교 문제에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이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도 사명을 바칠 수 있죠."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 서진규는=희망연구소장, 하버드대 박사, 미 육군 예비역 소령. 1948년 경남 동래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엿장수의 딸로 태어나 가발공장 직공, 골프장 식당 종업원을 전전하다 1971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남편의 폭력과 외도로 두 번의 이혼을 겪었고, 미군에 입대했다. 1972년 퀸스 칼리지에 입학, 6개 대학을 거치며 15년 만에 메릴랜드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마흔둘에 하버드 대학원에 입학, 16년 만에 박사 학위를 따냈다.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낳는다' '서진규의 희망' 등 자전적 에세이가 35만부나 팔렸고 그녀의 삶은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됐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