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방앗간에 쭉 줄지어있던 고무통

7080세대인 나의 어릴 적 추석은 평소 못 먹었던 맛난 음식도 먹고 자주 못 봤던 친지들도 만나고 더불어 짭짤한 용돈도 생기는 한껏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엄마는 이것저것 분주히 준비하신다. 그 중 제일 재미난 일은 단연 방앗간에 따라가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많이 없는데도 깨끗이 씻긴 쌀이 담긴 커다란 고무 통들이 차례차례 줄을 서 있었다. 고무 통 주인이 굳이 지키고 서 있지 않아도 새치기하는 이도 남의 고무 통을 홀대하는 이도 없었다. 그 지루한 시간을 기다려도 짜증내지 않고 남의 그릇까지 챙겨가며 그저 흐뭇한 미소가 떠나질 않는 모습들이 기억난다. 어떤 기계는 대충 빻아져 나오고 또 어떤 기계는 곱게 종잇장처럼 갈려져 나왔다. 그렇게 준비된 쌀가루로 엄마가 반죽을 해오시면 온 가족이 손을 씻고 달려들어서 예쁜 송편 빚기 경쟁에 돌입한다.

그날은 여자도 남자도 따지지 않고 모두 둘러앉아 이러쿵저러쿵 수다 떨며 먹을만한 송편은 몇 개 되지도 않는 걸 빚는 모습들이 내 어릴 적 추석이었다.

요즘은 다 빚어 만들어진 송편을 사는 사람들이 보일 뿐 고무 통들의 질서정연한 모습은 보기 힘들다.

살아가는 일은 옛날이 훨씬 불편하고 가족 수도 많아 준비해야 할 양도 많았는데 어찌된 게 이 편리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더 간소화하고 서둘러 명절을 보내버리려 하는 것 같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요즘 아이들에게 명절은 추억거리가 없어진 그냥 쉬는 날로 인식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번 추석엔 아이들에게 송편을 빚어본 추억으로 기억되게 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남향옥(대구 수성구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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