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TV 영화를 보자] 하드서커 대리인

1958년이 저물어 갈 무렵. 허드서커사의 회장이 44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머스버거 이사(폴 뉴먼)는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해 다른 이사들과 함께 음모를 꾸민다. 무능한 회장을 영입하여 주가를 떨어뜨린 후 이를 다시 사들이려는 것이다.

한편, 시골에서 상경한 노빌(팀 로빈스)은 허드서커사의 우편실에 취직한다. 입사 첫날, 노빌은 회장의 청색 편지를 머스버거에게 전하러 간다. 마땅한 회장을 찾지 못해 고민하던 머스버거는 어리숙한 노빌을 전격 회장으로 추대한다.

머스버거의 예상과는 달리, 노빌은 훌라 후프를 개발해 큰 성공을 거둔다. 초조해진 머스버거는 노빌이 엘리베이터 보이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거짓 정보를 신문사에 넘긴다.

회장 자리에서 쫓겨나게 된 노빌은 절망하여 자살을 기도한다. 그때, 허드서커 회장이 천사가 되어 나타나 청색 편지가 전달되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편지엔 출세만을 목표로 삼았던 자신의 삶이 얼마나 공허했었는가에 대한 고백과 함께, 차기 회장이 실패를 두려워않고 마음껏 뜻을 펼 수 있도록 자기 재산을 전부 증여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노빌은 자신을 속인 에이미를 용서하고, 허드서커사의 진정한 회장이 되어 꿈을 이루어 나간다.

7일 EBS 일요시네마(오후 2시 40분)에 방영되는'허드서커 대리인'은 91년 '바톤 핑크'로 칸을 석권한 영화 천재 코엔 형제의 새 작품. 비정한 비즈니스 세계의 음모와 함정, 유혹이 그로테스크하게 펼쳐지면서 권력의 부조리를 꼬집고 있다. 94년 깐 개막작이다.

코엔 형제는 '분노의 저격자'부터 '밀러스 크로싱' '위대한 레보스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까지 만드는 작품마다 화제를 뿌린 수작들을 속속 배출했다. 각종 장르는 거의 다 실험 해 보았던 이들 형제가 1995년에 만든 코미디물이 바로 '허드서커 대리인'이다.

단순한 코미디를 넘어 여러 작품들의 이미지들을 영화 속에 녹여 넣었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지하 세트나 허드서커사의 텅 빈 공간 감각이나 압도적인 시계로 상징되는 내부는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의 지하 세트들과 닮아 있다.

인간의 깊은 분노와 불안 등을 세트와 공간으로 표현했던 독일 표현주의라는 영화 사조가 이 영화에서는 비인간적이고 인간 소외를 낳는 자본주의를 풍자하는 장치로 변모하는 것이다. 특히 감독은 추락이라는 동선을 모티브로 하여 극단적인 줌인을 자주 사용한다. 자살하는 허드서커 사장이나 노빌이 청색 편지를 전할 때 시계 소리나 진자 소리가 더하면서, 오직 이윤만 추구하는 허드서커사의 반 윤리성을 극단적인 카메라 워크로 실감나게 보여준다.

허드서커의 이사들이 한 화면에 깊은 심도로 찍혀 있거나, 노빌을 사장에 앉히고 깔깔대는 장면 등은 오손 웰즈의 걸작 '시민 케인'에 대한 오마주이다.

코엔 형제의 다른 작품과 달리 '허드서커 대리인'은 대중적이면서 현대인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결국 꼭두각시였던 노빌이 깨우친 것은 바로 사랑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 영원불변의 진리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