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드물지만 진료실에서 벌어지는 곤혹스러운 풍경 중 하나가 나이가 뒤바뀐, 아예 거꾸로 먹은 듯한 경우를 맞닥뜨리는 것이다. 어른 덩치만큼 큰 아이가 응석받이 시늉을 하는 것도 안타깝지만, 이제 겨우 젖먹이를 면한 듯한 어린아이가 애늙은이 노릇을 하는 것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모 손을 떠나 자라나는 아이들이 조숙의 기미를 보이는 것은 일면 이해되기도 하지만, 마음 한쪽으로 씁쓸해지고는 한다. 특히 부득이한 사정으로 부모를 일찍 여의거나 버림받은 경우에는, 거의 본능적으로 스스로의 절박한 상황을 깨닫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전 소아과 수련의 시절, 신생아실이나 소아병실을 맡아 보노라면 그런 눈물겨운 정경을 종종 만나게 된다. 딱한 사정으로 친모가 아기에 대한 친권을 포기하는 서약서를 작성하노라면, 그러잖아도 미숙아에다 이런저런 선천적인 결함으로 허덕이던 신생아가 돌연 바동거리며 몸부림을 친다. 마치 이 험한 세상을 이제부터는 제 힘으로 헤쳐나가야 된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한번은 보육원에서 한 갓난아기가 호흡곤란증으로 입원을 했다. 곁에서 보는 사람조차 숨이 가쁠 정도로 힘겹게 호흡을 이어가고 있던 아기가 한사코 젖병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도리 없이 공갈 젖꼭지로 물린 후에야 진정이 됐지만,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운 와중에서도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에 경이로움을 넘어서 숙연히 옷깃을 여미게 했다. 엄마 품이라는 울타리를 빼앗겨버린 어린 영혼의 고군분투 앞에서 말이다.
'대안가정운동본부'라는 단체에 지난 몇 년간 곁다리로나마 함께하면서 새록새록 느낀 바가 많다. '어떤 이유로든 아동은 가정에서 자라야한다' 는 슬로건을 내걸고, 뜻하지 않은 가정 해체로 힘겨워하는 아이들을 '가정위탁'을 통해 보살펴주자는 모임이다. 바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본디 가정이 회복될 동안 일시적이든, 때에 따라서는 아주 오랫동안이든 지켜주자는 것이다. 곁눈질로나마 지켜본 아이들의 변화는 자못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처음에는 이래저래 눈치를 보면서 잔뜩 움츠려들거나 혹은 과장된 몸짓으로 엉겨붙던 아이들 앞에서 일면 안쓰러우면서 서로가 불편했다. 차츰 가정이라는 울타리의 존재가 있다는 것에,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이, 이윽고 지켜보는 어른들도 편안해졌다. 늘 진료실에서 찾아오는 아이들의 병이나 몸을 챙겨주는 내가 작은 의사라면, 아이가 아이답게 자랄 수 있도록 땅을 고르고 울타리를 쳐주는 그네들이야말로 큰 의사임을 깨닫곤 한다. 우리 이웃의 누구도 원치 않던 애늙은이들의 제 나이를 찾아주는 것이 숱한 어른들도 제 나잇값을 되찾는 첫걸음이라는 것과 함께 말이다.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 원장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