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탕자의 귀환

사람의 마음을 감동으로 물들이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람 체취 물씬한 이야기다. 그것도 시련을 딛고 힘겹게 일어선 사람의 땀 냄새, 눈물 내음 묻어나는 이야기가 그러하다. 겉보기엔 질투가 날 만큼 행복의 조건들만 고루 갖춘 사람도, '저이라면 무슨 걱정이 있을까' 싶은 사람도 알고 보면 저마다 가슴앓이하는 것들이 있다.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이라고 했다. 애당초 인생살이란 게 구불구불 萬端愁心(만단수심)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할리우드의 '퇴물 배우' 미키 루크의 영화 같은 재기가 지구촌의 화제다. 오래전에 전성기가 끝났던 배우의 화려한 귀환에 세계가 떠들썩하다.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제65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그가 주연한 '더 레슬러'가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잡은 것이다. 잊혀진 존재였던 미키 루크가 다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는 1980년대 할리우드의 '킹카'였다. '보디 히트'(1981), '나인 하프 위크'(1986) 등 그의 출연작들은 에로틱하면서도 현대인의 공허한 내면을 특유의 영상 미학으로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지금 세계 최고의 매력남 브래드 피트보다 어쩌면 더 강렬한 매력을 지닌 섹시스타이자 연기력을 겸비한 당대 할리우드 최고 미남배우였다. 하지만 화려한 시절은 20여 년 전에 덧없이 끝났다. '인기'라는 향기에 도취, 무절제한 생활에 빠져들면서 3류 배우로 전락했다. 프로 복서가 된 후로는 반복적인 성형수술로 추한 모습이 됐고, 빚더미와 알코올 중독, 게다가 배우자 폭행죄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르토프스키 감독의 오랜 설득으로 자신의 파란만장 얼룩진 삶과 겹쳐지는 영화 '더 레슬러'에 출연하기로 결심했고, 일생 일대의 혼신을 다한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제 폐막식 날, 지난날의 핸섬 가이는 더 이상 없었다. 옛모습의 흔적조차 찾기 힘든, 늙고 추레한 50대 남자가 서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5년을 허비했다"며 만인 앞에서 현재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주었다. '돌아온 탕자'처럼 두 팔을 든 채 팬들의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자기 관리가 부족했던 한 유명 스타의 추락과 재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反面敎師(반면교사)가 될 것 같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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