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야 놀자] 레몬의 문제

영어 단어 'lemon'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레몬 열매, 레몬색을 지칭할 때도 있고 불량품, 조악한 저급재화를 의미할 때도 있다. 불량품을 레몬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레몬의 가격이 비싼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서양에서는 레몬이 쓰고 신맛이 강하며 당도도 낮아서 맛없는 과일 중 하나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레몬은 속부터 썩는 과일이기 때문에 겉만 봐서는 상태를 알 수가 없기에 불량품이라는 의미가 붙었다고도 한다. 레몬을 우리말로 의역하면 '개살구'가 적절할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레몬(개살구)의 문제'가 나타난다. 시장에서 판매자는 구매자보다 파는 물건의 속성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 결과 판매자가 품질이 낮은 물건(레몬)을 구매자에게 판매한다면 정보가 부족한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불리한(adverse)' 물건을 '선택(selection)'하게 되는 '역 선택(adverse selection)'이 나타난다.

중고차 시장의 예를 들어보면, 중고차 판매자는 자신이 소유한 차가 좋은 차(참살구)인지 문제가 많은 차(개살구)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참살구를 내놓은 사람은 최소한 400만원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개살구를 내놓은 사람은 200만원이면 기꺼이 팔려고 한다고 가정해 보자. 차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구매자는 겉모습만 보고 좋은 차를 구분해내기는 어렵다. 따라서 흥정을 할 때 400만원과 200만원의 평균쯤에 해당하는 300만원 정도를 지불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참살구를 내놓은 사람은 차 팔기를 포기할 것인 반면 개살구를 내놓은 사람은 그 차를 주저없이 팔 것이다. 이런 일이 거듭되다 보면 결국 참살구는 중고차 시장에서 사라지고 개살구만 득실거리는 '개살구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보통 중고차 시장에서 거래되는 차들이 고장이 잦을 것이라고 막연히 의심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생각이 실제로 어느 정도 맞기도 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 때문에 방금 2천만원을 주고 산 차가 주차장 밖으로 나오는 순간 1천500만원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논리'만 가지고 판단한다면, 방금 나온 자동차를 다시 팔려는 이유는 그 차가 불량품인 경우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록 그 자동차가 불량품이 아니더라도 구매자는 차에 문제가 있다고 추측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중고차 시장에서 차를 구입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보험에서도 나타난다. 대개 자신의 건강 상태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그렇지만 보험사는 나이, 성별 등 동일한 조건의 집단에 대해 동일한 보험료를 매길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건강이 나빠 보험금을 탈 확률이 높은 사람이 가장 유리해진다. 이 때문에 보험금을 과다하게 지급하게 된 보험사는 보험료를 올리게 되는데, 이로 인해 건강한 사람은 보험을 더더욱 기피하게 된다. 그래서 보험 시장에는 건강이 나쁜 사람만 남고 건강한 사람은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보험 시장은 중고차 시장과 마찬가지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할 위험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대응한다. 그 중 한 가지 방법이 '신호보내기'이다. 이는 정보를 가진 쪽이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신빙성 있게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중고차 시장에서 인터넷 등을 통해 중고차에 대한 차 이력을 제공하고 일정기간의 품질 보증도 해주는 것이다. 망설이는 구매자들에게 '개살구'가 아니라는 정보를 제공해서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다. 요즘 결혼하기 전에 상대방에게 자신의 신용 상태를 조회해서 보여주는 경우도 있고 성형의혹을 피하기 위해 중·고교 시절 졸업앨범을 공개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정보의 불균형에 대응하는 방법이다.

박경원(대구과학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