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맑은 날/최정례

웬 여자가 바닷가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영아야 영아야 야야아…… 큰 파도가 한번 있었을 뿐인데 모래장난하던 아이가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고…… 십년도 더 지난 일이다. 강릉 바닷가에 놀러갔을 때 더없이 푸르고 청명하기만 한 날, 사람들이 웅성대며 몰려있는 한 가운데 주저앉아서 파도에 휘말려 바다 밑으로 끌려가 영 나오지 않는 아이를 부르던 여자가

어떤 때는 내 엄마 같고, 다 큰 딸을 가진 중년의 나같고, 때로는 주저앉아 울고 있는 내 딸같기도 하고

맑은 날 하늘은 왜 저리 멀쩡한가. 숱한 슬픔과 고통과 절망이 매일같이 넘쳐나는데 가을 하늘은 왜 저리 멀쩡한가. 구름 한 점 없이 근심, 걱정 하나 없이 저토록 쾌청한 햇살을 마구 쏟아부어도 되는 것인지.

큰일을 당했을 때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은 주변 사람들의 멀쩡한 표정이다. 자신은 헤어날 수 없는 절망의 우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푸르고 청명한 하늘 보며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들. 위로한답시고 울음을 참으라고 자꾸 권하는 사람들.

'큰 파도가 한번 있었을 뿐인데' 한 사람의 삶은 송두리째 뽑혀나간다. 속절없이 대책도 없이 우리 삶은 운명에 끌려가야 하는가. 낙지처럼 버르적거리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 바라보는 파란 하늘. 거울의 이면처럼 검은 색을 등 뒤에 감춘 하늘은 저리 멀쩡한 표정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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