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줄로 읽는 한권]거꾸로 본 황제들의 중국사

진시황은 소심한 허수아비, 당태종 이세민은 꼼수황제

중국 역사상 황제 제도는 정말이지 가장 황당한 제도였다. 수많은 직업들 중 어떤 직업에 종사하건 일정한 자질과 조건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로지 황제라는 직업만은 아무런 자질이나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장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라도 누구든지 쫓아가 빼앗으면 그만이었다. 『황제들의 중국사』 사식 지음/김영수 옮김/돌베개/330쪽/12000원

'역사 뒤집어 보기'는 언제나 재미있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그 객관성을 떠나서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었던 사실을 뒤집어 풀어내는 책은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물론 이런 책의 효용가치는 강의실이나 도서관에서 보다는 뒷간이나 KTX 좌석에서 극대화되는 편이 옳다. 그렇다 해도 이러한 책의 독서는 우리의 선입견의 댐을 터뜨려 상상의 범람을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제법 유익하기까지 한 일이라고 본다.

『황제들의 중국사』는 중국 황제들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들을 죄다 뒤집어엎어 버린다. 책에 의하면 진시황은 카리스마 넘치는 절대 권력자가 아닌 한평생 남들에게 이용만 당한 소심한 허수아비였다. '정관의 치'로 유명한 당 태종 이세민은 음흉한 꼼수를 써서 명성을 얻은 포퓰리스트로 전락하며, 천하의 멍청이로 유명한 촉의 후주 유선은 오히려 그럭저럭 슬기롭고 무난하게 처세한 현자로 평가된다. 이 책에서 가장 훌륭한 황제로 지명되어 체면을 세우는 황제는 역대 개국 군주들 중 가장 존재감이 미미했던 송 태조 조광윤이다. 반면 강희, 건륭과 함께 중국 사상 최고의 전성시대를 열었다는 옹정제는 문자옥(文字獄)에 덜미를 잡혀 주원장, 유방 등과 비슷한 레벨의 폭군으로 격하된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를 다룬 장면이었다. 실수로 명장 원숭환을 참했으며, 끝내 오랑캐에게 나라를 빼앗긴 망국의 군주지만, 이 책에서는 그를 오히려 선각자적인 마인드를 가진 훌륭한 황제였다고 칭찬한다. 저자에 의하면 그가 망국의 군주가 된 이유는 지독히도 재수가 없어서였다. 북으로는 청나라가 호시탐탐 산해관을 두드리며, 남으로는 틈왕 이자성이 흉흉하게 진격해오니 아무리 혼자서 선정을 펼쳐봤자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무협작가 김용은 그 시절의 뒤숭숭하던 중국을 『벽혈검』이라는 소설에서 재미나게 재구성 한 바 있다. 역사와 허구를 적절하게 뒤섞는 작가의 특기는 이 소설에서도 넉넉히 발휘되어 홍타이지, 이자성, 조화순 등의 실존 인물들과 원승지, 금사랑군, 귀신수 등 허구의 인물들은 그럴싸하게 어우러지며 한바탕 신명나는 무협 활극을 펼친다. 김용의 팬이라면 대작 『녹정기』의 완전한 이해를 위해서라도, 그 전편에 해당하는 이 작품을 반드시 일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위소보의 사부 구난이 어쩌다 외팔이가 되었는지 정도는 알아야 진정한 김용 마니아라 자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원승지는 숭정을 바라보면서 아버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아버지 원숭환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켰는데도 이 암군에 의해 능지처참을 당했다. 비분과 증오가 격하게 가슴을 뒤흔들었다. 『금사 벽혈검』 김용 지음/강승구 옮김/중원문화/15000원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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