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가 사랑의 열병(?)을 심하게 앓고 있다. 상대는 바로 삼성이다. 대구시가 끊임없이 구애 공세를 퍼붓지만 삼성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대구시의 짝사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희갑 전 시장이나 조해녕 전 시장 때도 그랬다. 요즘 김범일 시장은 서울에 가면 틈나는 대로 삼성의 임원들과 만난다. 이런저런 도움을 청해보지만 아직까지는 큰 소득이 없다. 대구시가 2011년 세계육상대회 스폰서 문제나 돔 야구장 투자에 대해 파격적인 제안을 했지만 삼성 측의 반응은 영 시큰둥하다. 지난 2000년 삼성상용차 폐업 당시 대구시민들의 격렬한 반발에 섭섭함(?)을 느낀 이후 줄곧 마음의 문을 닫아온 상황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
김 시장이라고 마냥 속이 편할 리 없을 것이다. 나름대로 대구를 위한 최선의 방책이라고 판단해 힘겨움을 감수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실 사업 파트너로서는 물론이고 대구와 연관을 맺은 기업 중에서 삼성만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짝사랑이란 게 늘 그렇듯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실의에 빠지게 한다. 씁쓸함과 아쉬움, 상대에 대한 미움, 자신의 왜소함 같은 감정의 찌꺼기가 가슴에 남아있기 마련이다.
이 때문인지 대구와 삼성의 관계는 마치 촌무지렁이가 세계적인 여성 명사에게 구애하고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삼성이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기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구시의 접근방식 때문이다. 남녀관계는 물론이고 공적인 관계에서도 상대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기술도 필요하지만 순수하고 냉철하게 자신을 알리는 방식이 훨씬 효율적일 때가 많다.
얼마 전 김범일 시장은 기자들에게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줬다. "내년은 고 이병철 회장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가 앞장서서 행사를 하면 삼성에 큰 감동을 줄 수 있다." 대구를 거쳐간 인물 중에 고 이병철 회장만한 이가 어디 있겠는가. 위대한 인물을 조명하고 기리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된 행사가 아니다. 이런 행사를 열면 삼성이 대구에 큰 투자 한두 개쯤 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에서 나온 발상이다. 상당히 감성적인 접근법이다. 대구시가 몇 년 전부터 '삼성상회 복원' '제일모직 후적지의 삼성 역사관 건립' 같은 제안을 내놓았지만 삼성이 아파트 건립을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삼성은 철저하게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이다. 그에 걸맞은 접근법이 필요하다. 그냥 투자해달라고 조르거나 매달리는 게 능사가 아니다. 지나친 구애는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다. 기업의 이익을 보장해 줄 수 있는 큰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정당하게 투자 요구를 하는 게 올바른 길이다.
얼마 전 한 분이 베이징올림픽 개회식에 다녀온 후 삼성의 역량에 다시 한 번 놀랐다고 했다. 전 세계의 주요 고객들을 초청, 삼성 로고가 찍힌 버스로 실어나르며 가장 좋은 좌석에서 관람케 하는 장면을 봤다고 한다. 그는 "삼성이 대구의 세계육상대회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에 씁쓸함을 느꼈다고 했다. '애증의 변주곡'이라고 할까.
짝사랑을 하면서 가장 힘들 때가 언제일까? '포기하고 싶어도 어쩌다 잘해주던 모습이 생각나 미련을 못 버릴 때'가 아닐까. 일부에서는 그만한 정성을 다른 곳에 기울였으면 뭔가 이뤘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지만 현재로선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현안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구애는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남녀관계가 원활해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미우나 고우나 삼성 라이온즈가 후반기에 좋은 성적을 거둬 가을에도 계속 야구를 봤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박병선(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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