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新한일어업협정 10년…선장 두 명의 '삶의 궤적'

만선가 부르던 입에선 깊은 한숨만

▲ 출어경비도 건지지 못하는 일이 이어지자 구룡포항에는 아예 닻을 내려버린 어선들로 만원이다.
▲ 출어경비도 건지지 못하는 일이 이어지자 구룡포항에는 아예 닻을 내려버린 어선들로 만원이다.

신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된 지 10년이 지났다. '잃기만 한 협상'이라는 비난을 샀던 협정 결과는 예견했던 대로 우리 어민들의 몰락으로 나타났다.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난 어민들의 빈자리에는 눈물과 한숨만 남았다. 협정 전과 지금의 달라진 어민들의 삶을 선장들을 통해 들여다본다.

◆신한일어업협정 전

1998년 4월 경북 동해안 최대 어항인 포항 구룡포항.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가운데 선원들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출어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17t급 자망어선 선장 박연준(당시 52세)씨는 선원들에게 "만선으로 돌아오자"며 격려했다.

구룡포항을 떠난 배는 '물 반, 대게 반'이라는 오키군도에서 쉬지 않고 그물을 끌어올렸다. 몸통이 어른 주먹보다 큰 대게가 주렁주렁 매달려 올라왔다. 한 배 가득 대게를 잡은 박씨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일주일여 만에 구룡포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박씨가 대게잡이철마다 일본 수역을 오가며 어획한 대게의 위판액은 6억~7억원에 달했다. 돈 버는 재미가 쏠쏠했다.

32t급 오징어채낚기어선 선장 김석암(당시 46세)씨는 1998년 10월 대화퇴 일본 수역 어장에서 오징어잡이에 나섰다. 밤새 조업을 해서 1천상자(8㎏짜리 상자)를 어획했다. 구룡포항에서 상자당 2만4천원에 위판해 2천400만원이라는 목돈을 만졌다.

자망과 오징어채낚기 어선을 보유하고 있는 김재환(당시 43세)씨도 사정은 비슷해 하루라도 출어를 쉬지 않을 만큼 부지런히 움직였다.

박씨는 "대화퇴와 오키군도 해역은 물 반 고기 반일 정도로 어자원이 풍부했다"면서 "여기다 출어경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유류비도 드럼당 3만5천원대여서 출어에 대한 부담도 없어 조업이 곧 돈이었다"고 말했다.

나가면 만선이라는 소문을 듣고 외지 선원들도 대거 몰렸다. 월 평균 200만~300만원은 거뜬히 벌었다. 신바람난 선원들이 주머니 돈을 풀면서 덩달아 읍내 경기도 펄떡였다.

◆협정 10년 후…지금은

2008년 9월, 구룡포항은 활기를 잃은 채 짙게 깔린 구름처럼 무거운 낯빛을 하고 있다. 어항에는 출어를 하지 못한 어선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지금 60대가 돼버린 '왕년의 선장' 박씨에게는 배가 없다. 17t급 자망어선으로 시작해 41t짜리로 규모를 늘렸던 그는 2006년 눈물을 머금고 배를 팔았다. 출어가 곧 적자인 상황에서 더 이상 어선을 유지할 수 없었다.

박씨는 "신한일어업협정이 어민들의 터전을 뺏어 버렸다"면서 "일본의 배타적 경제구역(EEZ) 설정으로 대게 황금어장인 오키군도에 입어하려면 일본 측으로부터 조업허가를 얻어야 가능한데 일본이 어획량을 규제하고 있어 사실상 조업이 어려운 실정이다"고 말했다.

김석암씨는 "당시에는 오징어 성어기 때 한달에 1억원의 위판고를 기록했는데 지금은 절반으로 떨어졌다"면서 "여기다 10년간 물가상승분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소득은 훨씬 더 떨어졌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지난 한 해 동안 조업을 통해 2억5천만원을 위판했는데 출어경비 1억8천만원을 제하고 7천만원을 받았다. 여기서 다시 선원 임금과 대출이자 등을 제하고 나자 고작 3천만원을 손에 쥐었다. 목숨 걸고 배를 탄 대가치곤 기대 이하였다.

여기에다 면세유가도 폭등해 어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10년 전 드럼당 3만5천원에서 지금은 무려 6배가 넘는 20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또 어민들의 조업일수도 줄어들었다. 협정전에는 우리나라와 일본 영해를 오가며 3, 4월에도 오징어를 잡을 정도로 빡빡했으나 지금은 일본 영해는 들어갈 수 없어 조업일수가 그만큼 줄어들었다.

이 같은 고통은 선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10년 전 월 평균임금이 200만~300만원이었는데 지금도 200만원 선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선원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한두 명씩 떠나기 시작한 선원들이 몇년 전부터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그 자리를 지금은 외국인 선원이 대신하고 있다. 10년 전 한명도 없었던 외국인 선원이 지금은 구룡포에만 200여명에 달한다.

김재환씨는 "선원들 상황만 봐도 10년 전과 지금이 너무나 달라진 현실을 알 수 있다"면서 "신한일어업협정으로 잃은 것이 너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어민들은 "신한일어업협정으로 인해 독도가 중간수역에 포함되면서 일본에 영유권 주장의 빌미를 제공해 준 꼴이 되고 말았다"면서 "정부의 허술한 대응이 일본으로 하여금 독도망언을 되풀이하게끔 만든 원인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포항·이상원기자 seagul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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