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추석대목을 앞둔 재래시장의 분위기가 썰렁하다.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은 "산 것도 없는데 돈은 많이 나갔다"며 울상이고, 상인들은 "흥정 다 해놓고 발길 돌리는 손님들 때문에 환장할 지경"이라고 볼멘소리다.
상인들은 짧은 연휴 때문이라 애써 위안을 하면서 막바지 반짝 대목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안동 중앙신시장=추석을 나흘 앞둔 10일 안동시 옥야동 중앙신시장은 손님들이 띄엄띄엄 눈에 보일 정도로 한산했다. 예년에 비해 2주나 빨리 찾아온 추석 탓에 각종 제수용품 가격이 치솟아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를 더욱 옥죄고 있는 게 그대로 나타난 것.
사과와 단감은 지난해에 비해 40% 정도 올랐고 차례상에서 빠질 수 없는 명태는 1마리에 평균 2천200여원으로 43%, 참조기는 8천원으로 10%가 올랐다. 게다가 올해는 수산물의 정부 비축물량 방출계획도 없어 소매가격의 강세는 그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떡집을 하는 권복례(52)씨는 "예년 같으면 이맘때엔 주문량이 밀려 일손을 빌려야 했으나 올해는 하루 10여건의 주문도 못 받고 있다"며 60% 이상의 매출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돔배기·조기 등 제수용품을 30여년째 팔아온 김정분(67)씨는 "요즘 젊은이들은 대부분 백화점이나 할인점 등에서 차례상 차림을 준비하는 것 같다"며 "시장에 오면 덤도 있고 인심도 얻어 갈 수 있는데 그걸 모른다"고 투덜댔다.
추석을 앞두고 반짝 대목장이 설 것이란 기대도 있다. 올해는 짧은 연휴로 인해 추석대목 마지막 5일장인 12일과 추석앞인 13일 이틀 동안 반짝 활황이 예상된다는 것. 김상진 중앙신시장번영회장은 "추석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진풍경을 연출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불황과 경기침체는 재래시장뿐 아니라 특산물 판매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안동지역 대표적 특산품인 간고등어의 경우 추석 선물과 제수용으로 판매된 물량이 지난해의 절반 정도에 그치고 있다. 안동시 안흥동 A간고등어 판매점 경우 지난해 2만여손(1손은 두마리)을 판매했으나 올해는 9천여손 판매에 그쳤다. 또 옥동 인터넷센터도 지난해 2억원의 절반인 1억원의 매출도 겨우 올린 상태다.
안동시 안흥동 '안동특산물직매장'도 절반 매출에 그치고 있다. 이 회사 박정희 대표는 "지난해 추석이나 설명절에는 수백만원하는 세트도 팔려나갔으나 올해는 완전히 사라졌다"며 "지난해 5만원짜리를 주문했던 손님들이 2만~3만원으로 줄이는 등 전반적으로 매출이 급감한 상태"라 했다.
◆포항 죽도시장=10일 포항 죽도시장에서는 "죽겠다"는 푸념만 가득했다. 건어물상 박모(58)씨는 "선물용 멸치값만 해도 작년 이맘때보다 20~30% 정도 올랐다"고 했다. 10여개 점포가 줄지어 선 건어물 골목의 올 추석 매출액은 지난 설 대목보다 10% 이상, 작년 추석 때와 비교하면 30% 이상 감소했다는 것.
제수용 생선을 깨끗하게 다듬어 파는 맞은편 가게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25년째 장사한다는 이모(67)씨는 "수입산 조기도 한마리에 1만원 이하는 없다"면서 "최근 몇 달 사이에 마리당 4천원이나 올랐다"고 했고, 생물 생선을 파는 최모(49)씨는 "어선들의 출어 경비가 오른 만큼 생선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며 "고등어 한마리에 4천원 받으려니 미안할 따름"이라고 겸연쩍게 웃었다.
"값이 내린 품목이 있느냐?"는 질문에 상인들은 한결같이 "아마 없을 걸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 이유로 '기름값 인상'을 들었다. 생선가게나, 건어물상이나, 야채상이나, 하다못해 고사리·더덕 파는 곳에서도 그랬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래도 싱싱하고 싸다"며 무리 지어 찾아오는 대구 손님들이 올 추석을 앞두고 부쩍 늘었다는 사실이다. 올 들어 죽도시장에서 나타난 뚜렷한 변화가 대구에서 원정 오는 쇼핑객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상인 김인숙(46)씨는 "지난봄부터 표시나게 늘더니 최근에는 대구 손님이 더 많은 날도 있다"고 전했다. 이웃 주민 4명과 함께 오전 5시 30분 대구에서 출발했다는 이인옥(51·여)씨는 "새벽에 도착해서 물회로 아침식사도 하고 싱싱한 생선을 싼 값에 살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죽도시장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구룡포·장기 어판장 등 해안가 항구에도 조금이라도 더 싼 값에 제수용품을 장만하려는 대구 등 외지인들의 발길이 더욱 잦아졌다. 추석 대목 경기 조사차 죽도시장에 나온 포항상의 김석향(47) 실장은 "시설이나 상인들의 인식을 조금만 바꾸면 재래시장이 옛 명성이나 인기를 다시 찾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올 추석 대목장에서 발견했다"고 말했다.
◆고령 5일장=지난 9일 고령 5일장. 어려운 경제적 여건 때문에 시장 분위기가 예년만 못했다. 더 깎아달라는 손님과 한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상인들의 흥정소리로 제법 시골 대목장 맛이 났지만, 제수용품을 구입하러 나온 할머니 모습만 눈에 띌 뿐 젊은 주부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시장을 찾은 할머니들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살피고 가격을 묻기만 할 뿐 그냥 가기가 일쑤. 상인들이 값을 낮춰 손님을 붙잡으려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생선가게는 사정이 나은 편이에요. 평균 30~40% 정도 올랐지만 차례상에 생선을 안 올릴 수는 없잖아요. 대신 마리 수와 크기를 줄여 구입하고 있어요." 고령시장에서 30년 넘게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오화순(55)씨의 말이다.
남편과 함께 추석장을 보러 온 소말련(62·우곡면 객기리)씨는 "작년에는 1만원짜리 조기를 차례상에 올렸는데 올해는 8천원짜리로 낮췄다"며 "조상님도 이해하시겠지…"라는 혼자말을 남기고 과일가게로 총총 자리를 옮겼다.
수박 1개(1만원)와 참외 3개(6천원), 사과 3개(5천원), 배 1개(3천원), 감 5개(5천원), 바나나(5천원) 등을 구입한 김명순(69·쌍림면 귀원리)씨는 "아직까지 시골 사람들은 경제사정 때문에 차례상에 차릴 가짓수를 줄이지는 않아요. 대신 보다 작은 것을 구입해 비용을 줄인다"고 했다.
고령·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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