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자전거 도둑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1948년)은 2차 대전 후 이탈리아의 궁핍한 모습을 잘 보여준 영화이다. 오랫동안 실직 상태인 주인공이 벽보 붙이는 일을 구하자 아내는 자신이 소중하게 간수하던 침대 시트를 전당포에 잡히고 자전거를 구한다. 그러나 일 나간 첫날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하루 종일 헤매던 주인공이 결국 다른 사람의 자전거를 훔치다가 붙잡히고 만다. 가난하지만 가족을 지키려는 한 가장의 절박함이 자전거를 통해 잘 그려진 작품이다.

당시 데 시카 감독은 미국의 제작사로부터 주인공 역에 톱스타 캐리 그란트를 기용하면 거액의 제작비를 대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스타'와 '돈'은 영화감독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그러나 그는 이를 거절하고 철공소의 기계공인 람베르토 마조라니라는 비전문배우를 썼다. 아들 역에도 실제 로마의 신문배달 소년(엔초 스타졸라)을 캐스팅했다. 가난에 찌든 모습은 '연기'할 수 없다는 의도에서였고, 그의 생각대로 영화는 60년이 흘렀지만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자전거 도둑은 가난과 절망의 극단을 보여주는 사례로 곧잘 영화에 그려지고 있다. 중국 6세대 감독 왕 샤오슈아이의 '북경자전거'(2001년)도 그렇다. 열일곱 살 배달 소년이 자전거를 잃고 헤매다 비슷한 처지의 자전거 도둑 소년을 만나 가난과 절망을 함께 느끼는 이야기다. 자동차로 물결을 이루는 번화한 거리 사이로 망가진 자전거를 이고 걸어가는 소년의 뒷모습은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빈부격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소설가 박완서는 동화 '자전거 도둑'에서 훔치듯 가져온 자전거 때문에 양심이 찔리는 열여섯 살 소년을 통해 가난, 그 무서운 절박함을 잘 그려주고 있다.

최근 자전거 도둑이 극성이다. 예전에는 비싼 자전거만 훔치던 것이 이젠 고철 값만 되면 브랜드에 상관없이 훔쳐간다고 한다. 가난이 문틈으로 들어오면, 양심은 대문 열고 나간다고나 할까. 실직과 경제난 속에서 서민들이 즐겨 타는 '발'마저 수난을 겪고 있다.

영화 '자전거 도둑'은 주인공이 아들과 함께 군중 속으로 사라지면서 끝이 난다. 암담한 현실의 무력감이 주인공의 어깨에 내려앉아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60년 전 전후 이탈리아의 뒷모습이 21세기 한국의 슬픈 자화상처럼 다가온다.

김중기 문화팀장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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