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종문의 펀펀야구] 권혁이 받은 세 번의 충격

팔꿈치 인대 수술을 받고 재활 훈련을 시작했던 권혁에게 2005년 여름은 밀림 속을 헤매는 미아같은 기분이었다. 시속 150km대의 광속구로 각광을 받았던 2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지금의 현실이 막막하기도 했지만 정작 군 문제가 더 심란하게 만들었다.

재활 훈련을 끝내고 다시 마운드에 서서 예전의 모습을 찾기까지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면 차라리 그 시간에 입대를 해버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회복이 되어 정상적인 활동을 하더라도 언젠가는 군에 입대해야 하니 다시 2년간은 공백이 생길 터였다. 상무나 경찰청의 원서를 쓰는 겨울이 오기 전에는 결정을 해야할 문제였으니 여름 내내 그저 착잡하고 답답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해 10월 조계현 코치가 부임해왔다. 그는 낙관적인 사고로 엄격한 조련사라기보다 오히려 협력자의 위치에서 선수들을 대하는 스타일이었다. 재활 과정을 살피다 조금씩 가까워진 어느날 권혁의 고민을 알게 된 조 코치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올림픽 나가면 되잖아. 대표 선수로 메달 따면 자연 해결되지 않겠어?"

그 순간 권혁은 머릿속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올림픽이야. 바로 그거야." 새로운 목표가 생긴 권혁은 길고 긴 재활 훈련에도 오로지 국가대표를 꿈꾸며 훈련에 전념했고 2006년 가을 다시 마운드에 올라 팀 우승에도 기여했다. 고삐를 늦추지 않았던 권혁은 그로부터 1년 뒤 베이징올림픽 야구 1차 예선에 출전했다.

티켓을 따내지 못했던 한국은 이듬해 3월 2차예선에 나섰고 선동열 감독의 고사로 조계현 코치가 투수 코치를 맡게 됐다. 권혁은 온힘을 다해 자신의 몫을 해냈고 꼭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이제 목표의 최종 관문인 본선만 남았다.

7월12일 베이징올림픽 한국 야구대표팀 최종 명단이 발표되기 이틀 전이었다. 조계현 코치가 권혁을 조용히 불렀다. "내부적으로 결정됐는데 최종 본선명단에 탈락됐어. 그동안 정말 열심히 했는데 미안하다." 그 순간 권혁은 앞이 캄캄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을 놀리려는 거짓말 같았다. 사실 쉬지 않고 달려온 탓에 어깨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대표팀 탈락을 우려해 등판 간격을 조절하며 잘 버텨온 터였다.

겨우 마음을 추스린 권혁이 다음날 저녁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코치님, 모든 게 아직 능력이 부족한 제 탓입니다. 또 기회가 오겠죠. 제 걱정 마시고 금메달 꼭 따세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날 조계현 코치는 하얀 담배 연기를 연신 내뿜으며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무심코 내뱉은 조언이었지만 그것이 인생의 목표가 됐다면 그 도전은 함께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이 진정한 협력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발표 당일 아침 김경문 감독을 찾은 조계현 코치는 좌완 중간 계투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간청했고 그날 오후 숙소에서 대표팀에 이미 뽑힌 장원삼(히어로즈)으로부터 대표팀 선발 소식을 전해 들은 권혁은 또 한번 충격을 받아야 했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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