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전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통해 거대여당의 힘을 보여주겠다던 한나라당이 추경안처리에 실패하면서 가까스로 정상화된 정기국회가 파행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내에서는 추경안처리에 따른 후유증이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은 향후 국회운영에 협조할 수 없다며 대여강경자세를 선포하고 나서는 등 당분간 여야관계는 냉각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추석직후 추경안을 다시 처린한다는 방침이지만 민주당은 다시 예결위심의를 받아야 한다며 재격돌을 예고하고 나섰다.
12일 새벽 강행처리 카드를 빼들었던 한나라당이 선진당 등의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추경안처리에 실패한 것은 예결특위 의결정족수 문제 때문이었다. 소속의원들이 추석을 앞두고 귀향활동에 나서면서 정족수가 부족해진 한나라당이 급하게 다른 의원으로 특위위원을 교체했으나 '사보임절차'가 매듭지어지기 전에 예결위가 의결을 하는 바람에 무효논란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11일 하루종일 추경안이 처리될 것이란 낙관론과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엇갈렸지만 예결위 계수조정소위는 이날 밤 11시30분께 추경안 통과에 반대하는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사실상 여당 단독으로 의결했다. 한나라당은 이어 예결특위 전체회의를 열었지만 자정을 넘기자 차수를 변경, 추경안 의결은 12일 새벽 0시 6분께 이뤄졌다.
이한구 예결특위 위원장은 참석 의원 수를 예결특위 전체 의원 50명 가운데 의결 정족수가 넘는 26명으로 계산, 의사봉을 두드렸다. 그러나 회의에 불참한 한나라당 황영철 의원이 박준선 의원을 대신 참석토록 하는 사보임 서류를 0시5분에 국회 의사과에 접수했지만 사보임이 공식확정된 시점은 추경안 통과시각을 넘긴 0시32분께인 것으로 뒤늦게 확인되면서 논란이 빚어진 것이다.
민주당 조정식 원내대변인은 "예결위 전체회의 추경안 의결은 사보임 조치가 안되고, 의결정족수 부족 상태에서 이뤄진 국회법을 어긴 날치기 불법처리"라며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서둘러 예결위 전체회의를 다시 개최하려 했으나 이미 산회를 선포한 뒤여서 불가능해졌다. 뒤늦게 한나라당은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추경안의 직권상정을 요구했으나 김 의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이날 예결특위 전체회의와 본회의를 열어 추석 전 추경안을 통과시키려던 한나라당의 시도는 무산된 것이다.
이같은 사태가 빚어지자 민주당은 '여당의 예산통과 폭거'이자 '미숙하고 졸렬한 군사작전 강행 실패'라며 강하게 성토하고 나섰다. 정세균 대표는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여당은 잘못된 추경안 통과 시도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응분의 책임을 지라"며 "일방적이고 다수에 의한 횡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막아낼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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