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역 선도산업 선정 "대구경북만 완전히 당했다"

▲ 대구경북에는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업들이 몰려오고 있지만 정작 정부의 광역경제권 선도산업에는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빠져 강한 비판이 일고 있다. 포항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발전용 연료전지 공장이 준공된 가운데 연료전지사업의 핵심기술 개발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포스콘 직원들이 연료전지 내부를 살피며 토론하고 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 대구경북에는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업들이 몰려오고 있지만 정작 정부의 광역경제권 선도산업에는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빠져 강한 비판이 일고 있다. 포항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발전용 연료전지 공장이 준공된 가운데 연료전지사업의 핵심기술 개발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포스콘 직원들이 연료전지 내부를 살피며 토론하고 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지난 10일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대통령 보고 회의에서 발표된 '광역경제권별 신성장 선도산업 육성 계획'이 그대로 추진될 경우 대구경북경제권은 지금보다 훨씬 더 침체와 쇠퇴를 겪을 것이라는 우려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구시와 경북도는 중앙정부와의 재협의를 통해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고, 대경권의 활로와 재도약을 모색할 수 있는 비전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광역경제권별 신성장 선도산업 발전방안의 문제점을 분석, 원인과 대책을 모색해 본다.

◆의혹? 광역경제권 선도산업 선정과정=지식경제부는 지난달 23일 광역경제권별로 선도산업과 관련된 사업계획서(의견서)를 받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관련 공무원과 전문가집단 논의를 거쳐 이달 10일 균발위에 보고할 광역경제권별 선도산업을 확정했다.

지역 전문가들은 "각 지역이 지경부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와 10일 균발위에서 발표된 지역별 선도산업을 비교해 보면, 대구경북권이 얼마나 소외되고 외면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분개했다.

동남권(부산·경남·울산)의 경우 '동남권 조선해양 플랜트 사업구축' '자동차 융복합기술 확산 및 구조고도화를 위한 영남권 오토벨트 구축사업' 등을 제시, 선도산업으로 ▷수송기계 ▷융합 부품·소재 산업이 결정됐다. 수송기계는 자동차, 조선, 항공 등을 모두 포괄할 수 있고, 융합부품·소재산업 또한 모든 산업에 적용된다. 그만큼 앞으로 국제적 지역적 상황변화에 따라 다양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셈이다.

호남권(광주·전남·전북)의 선도산업은 ▷신재생에너지와 ▷광(光)소재로 정해졌다. 지경부는 친환경 녹색기술의 산업화로 녹생성장을 주도하는 '허브'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광소재만 하더라도 주요사업 내용으로 '조선기자재, 자동차부품, 바이오·의료기기산업과 광융합 핵심·원천기술, 응용 및 생산기술 개발' 등이 포함된다.

충청권의 의약바이오 역시 의과대학, 농과대학, 공과대학 등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포괄적 개념을 담고 있다.

그러나 대경권은 '그린에너지산업벨트 구축사업'을 ▷에너지로, '모바일·실용로봇 비즈니스 구축사업'을 ▷이동통신으로 바꿔 선도산업으로 정했다. 특히 에너지 분야는 '원자력 관련 산업을 중심으로, 가스하이드레이트 등 미래 에너지원 개발의 전초기지'로 못박아, 주목받고 있는 태양광, 연료전지,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배제했다.

전문가들은 "다른 지역은 포괄적 개념을 도입해 자율성과 변화에 대한 적응 가능성을 높인 반면, 유독 대구경북만 분야를 축소시킨 것은 엄연한 지역차별"이라고 비판했다.

◆대구경북 "이대로는 안 된다"=만일 균발위에 보고된 것처럼 ▷에너지(원자력 관련 산업을 중심으로)와 ▷이동통신 분야가 수정없이 그대로 대경권의 신성장 선도산업으로 확정될 경우 어떻게 될까?

원전 1기를 짓는 데 평균 2조5천억원이 든다. 따라서 정부는 경북 동해안에 원전 4기를 더 짓고는 10조원의 대규모 투자를 했다고 자랑(?)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달 4일 포항에서 준공된 세계 최대 규모의 발전용 연료전지 공장(포스코파워)과 STX에너지, 엑손모빌, 캐나다 일렉트로바야, 신일본석유+GS칼텍스 합작사, 독일 퓨어란드사, 미리넷솔라 등 대구경북에 투자를 확정한 에너지기업들에 대한 지원은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호남권의 신성장 선도산업이기 때문이다.

이미 대구경북에 투자하기 위해 MOU(양해각서)를 체결한 수십개의 에너지기업들은 뒤늦게 투자처를 바꿀 수도 있다.

광역경제권별 선도산업은 정부의 인력양성사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역대학들이 지역 에너지 관련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를 키워내는 데에도 막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대구경북의 몰락은 가속도를 더하게 된다.

이동통신 분야도 실속 없기는 마찬가지다. 휴대전화로 대표되는 이동통신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산업이다. 수도권과 대경권으로 분리된 국내 산업기반은 수도권으로 R&D(연구개발)의 중심이 옮겨가고 있고, 단말기 생산기지 역시 베트남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동통신'이 아니라, 'IT(정보기술) 융합산업'으로 바뀌어야 한다"면서 "지역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모바일을 포함한 IT 기반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산업에 적용하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신산업이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왜 이렇게 됐나?" 원인과 대책=이번 광역경제권 신성장 선도산업 선정과 관련, "대구시와 경북도의 관련 공무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강력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다른 경제권은 모두 '실속'을 톡톡히 차린 반면, 유독 대구경북만이 철저히 외면당한 데는 공무원들의 책임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관련 공무원들은 "지식경제부 실무자들이 우리 지역에서 제시한 안을 잘 수용해줄 듯한 태도를 보였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와 당혹스럽다"면서 "의료분야는 이번 선도산업 선정에서 제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강원도와 충청권 산업에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의 반응은 싸늘했다.

'대통령을 배출했다고 자랑하는 지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시·도는 뭘 하고 있었는지 도통 알 수 없다. 행정조직과 중앙정부와의 네트워크를 전면 재조정하지 않는 한 대구경북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 이번 사태로 명확히 증명됐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10일 균발위 회의 중 김범일 대구시장의 비판적 의견을 수렴, "선도산업은 결국 기업이 하는 것이다. 이날 발표된 것은 예시에 불과하므로 관련부처는 빠른 시일 내 각 지자체와 협의한 뒤 최종 계획을 확정하라"고 지시했다고 홍철 대구경북연구원장(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이 전했다.

홍 원장은 또 "대통령께서는 부족한 원천기술 확보에 전력을 쏟아야할 우리나라로서는 녹색성장을 위한 그린테크놀로지 분야에 과잉투자란 있을 수 없다며 한 지역에서만 그린테크놀로지를 독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했다.

홍 원장은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가 내려진 만큼, 시·도는 다시 전열을 정비해 생존권 차원에서 우리의 요구들을 강력하게 관철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경부는 지역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충분한 합의를 거치고, 이달 23일 국가신성장동력을 발표한 뒤, 필요할 경우 일부 조정해 오는 10월 광역경제권별 신성장 선도산업을 확정하겠다는 일정을 제시해 놓고 있다. 정부는 광역경제권별 선도산업이 결정되면, 11월 세부프로젝트를 발표하고, 12월 국가균형발전특별법 개정 등 추진체계를 마련할 방침이다.

기획탐사팀=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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