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내 한 증권사 지점장은 11일 추석 인사를 건네던 기자에게 "죽겠다(실제로는 더 심한 말을 했음)"고 했다. 남들은 즐거운 추석이라지만 자신은 도무지 즐겁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의 코스피지수는 1,919. 하지만 11일 코스피지수는 1,443이었다. 불과 1년만에 25% 가까이 주가가 폭락한 것이다.
"불경기라지만 유통업계는 매출이 오히려 늘어났다고 하잖습니까? 아직 상당수 계층이 불황의 직격탄을 피해가고 있다는 의미죠. 하지만 주식시장은 국내외 할 것 없이 가장강력한 폭탄이 터졌습니다. 저희가 그 폭탄을 바로 맞았습니다"
투자상품을 취급하는 증권맨들은 올해 한가위 보름달이 전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수입이 준것도 큰 고통이지만 매일 같이 쏟아지는 고객들의 항의와 하소연때문에 정신적으로 '몹시' 힘들다는 것이다.
◆"빈털터리랍니다"
대구시내 중소형 증권사의 A지점장은 "증권맨들은 인센티브(영업실적에 따라 주는 성과급)로 살아가는데 올해는 인센티브가 전혀 없다"고 했다. 그야말로 빈손이라는 것이다.
브로커리지(주식 매매를 통해 수수료 수익을 얻는 것) 영업을 많이 하는 증권사 지점의 타격은 특히 심하다. 주가가 폭락하면서 거래량이 급감, 수익이 나지 않은 것이다. 주가가 폭락한 5월 이후 돈 구경을 제대로 못했다는 증권사 지점이 수두룩하다. 지난해 이맘때와 비교할 때 증권맨들의 수입이 적게는 20, 30%에서 많게는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직원들을 다독여 또다시 영업을 해야하는 지점장들의 고충도 커진다.
수익이 없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주식담보대출 등 빚을 내는 형태로 주식 투자를 많이 권유했던 증권사 지점은 말그대로 '박살이 났다'.
올해 상실감이 큰 것은 지난해가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올해 대다수 증권사 지점장들이 목표를 많이 받았다. 목표는 지난해 실적에 따라 더 늘려 떨어지기 때문이다.
'날고 긴다는' 소문 때문에 서울로 영전해갔던 증권맨들도 '연전연패' 소식을 대구로 전하고 있다. 요즘은 자기 주머니까지 털면서 영업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손님들의 불평뿐이라는 것이다.
대구시내 한 대형증권사 B지점장은 "지난 여름 휴가도 못갔다. 손해가 났다고 몇시간 간격으로 전화를 걸어대는 고객들 눈치때문에 휴가를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번 연휴에도 또다시 전화가 쏟아질 것이다. 사무실에 안 나와도 매일매일이 정말 피곤하다"고 하소연했다.
◆추석선물 때문에…
지난해 9월 코스피지수가 2천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을 때 대구시내 한 증권사 지점은 VIP고객에게 추석선물로 고가의 갈비세트를 전달했다. 1세트당 10만원 안팎이지만 워낙 시장이 좋았고 이익이 많이나다보니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지점 수익이 워낙 없다보니 선물할 비용이 모자랐다. 과일세트로 바꿨다. 막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작년엔 고기를 주더니 올해는 왜 과일이냐, 손님들한테 손해를 보이더니 이제 선물값까지 아끼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잽싸게 소문을 들은 다른 증권사 한 지점은 경비가 모자랐지만 지난해와 같은 수준의 선물을 전달했다.
이 증권사 지점장은 "아무래도 시장이 좋지 않으면 경비지출에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또 욕을 먹을까봐 출혈을 해서라도 지난해 수준의 선물을 만들었다"고 털어놨다.
◆시장, 얼마나 나쁘길래
주식 직접 투자자든, 펀드 투자자든 평균 30%이상 돈을 까먹었다. 지난해 가을 주가가 꼭지에 올랐을 때 주식시장에 들어왔던 사람들은 절반 이상을 날린 사람도 많다.
결국 적잖은 사람들이 주식시장을 아예 떠나거나 펀드를 환매하고 있다. 증권사 지점장들의 시름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증시 침체기 속에 지난 7월 한달간 국내·외 주식형펀드 계좌수가 20만개나 줄었다. 투자자들이 주식형펀드 통장을 앞다퉈 해약, 투자상품시장을 떠나고 있다는 의미.
이달초 자산운용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7월말 현재 국내·외에 투자하고 있는 주식형펀드 계좌수는 모두 1천797만4천830개로 6월말(1천817만171개)에 비해 19만5천341개(1.07%)가 감소했다. 월간 기준으로 2006년 말 한차례 이같은 현상을 보인 보인 이후 주식형펀드 계좌수가 감소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주식형펀드는 1천8만6천146개로 전달보다 6만1천472개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주식형펀드는 788만8천684개로 13만3천869개나 줄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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